퇴근 길에 읽은 이윤학의 시 한수.
가슴이 저릿하다.
(볼드나 이탤리은 원문에는 없음)
순간
개운산 동쪽 편에는
소원을 비는 그리 크지 않은 터가 있는데
가끔 몸빼를 입은 할머니들이 찾아와
알루미늄 새시 안 소형 불상 앞에 초를 밝히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들 손이
한 바퀴씩 비벼지곤 하는데 어떤 이는
한 바퀴 빙빙 돌면서 그 의식을 진행하는데
촛불은 심지를 잡아끌고 있는데
나는 점점 더 부끄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누굴 위해 간절했던 적이 별로 없던 내게도
원을 그리는 손에서 생긴 것 같은 온기가
느껴져 더더욱 부끄러워지곤 하는데
거기 몇 평 안 되는 모래 많이 섞인 땅에서는
손바닥에서 떨어진 것인지
모래 크기보다 훨씬 작은 빛이 나곤 하는 것이다.
산책 갔다 오는 개가 앞만보고 주인 앞에 서서
급한 경사 길을 내려오는 것이
참 예뻐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바람에 날려 하얗게
손바닥을 펴 보이는 내 닥나무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이다.
내 닥나무에게도 순간, 순간이 차곡차곡 채워지는 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한참 동안 울먹거릴 운명이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