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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읽은 책들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입원한 이후 하루에 12시간 이상 ‘TV’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긴장감이 전혀 없는 아침 드라마의 줄거리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버섯을 먹으며 자라는 돼지라든가, 동지 팥죽 이야기라든가 하는 지역 소식들도 나름대로 재미 있고,
CF도 한참을 보다보니 제법 신선해 지는 것이다.

어쨌거나 TV를 보는 것 외에는 그다지 할 일이 없는 병실에서
몇권의 책을 봤다.

1. 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은행나무

신혼부부용 맨션에 우연히 동거-말 그대로 같이 사는 것, 상호간에 섹스나 사랑은 없다-하게된 다섯사람(남자3 여자2)의 이야기.
이른바 ‘Room Share’라 불리우는 일본의 새로운 풍속도 – 아파트나 단독주택에서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흔히들 최근의 문학이나 영화에서 ‘가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전통에 대한 단절이라거나 개인주의의 득세라거나 하는 일방적인 해석을 내리곤 하는데…이에 대해서는 몹시 불만이다.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구조주의에서 탈 구조주의로,
고전물리학에서 현대 물리학으로
혼란스럽지만 필변하는 일련의 과정은,
사회나 구조에 집중되던 권력이 개인에게 이양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이 소설은 그래서 (아마 이 68년생 작가도 그러하겠지만)
국가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 이것은 물론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와는 또다른 문제이다.)
다만 너무나 흔한 우리의 일상을 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병렬로 늘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고,
이야기도 계속 흘러간다.
그래서
재미있다.

2. 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 문학세계사

아멜리 노통이다. 긴말이 필요치 않은 작가.
이번 작품은, 혈통에 관한 이야기.
나쁜 피는 유전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혈연이라고 여겨지는 그 끈적하고 질긴 관계에 대한 부정까지.
노통의 재기발랄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3. 새롭게 읽는 한국의 신화/ 조성기/ 동아일보사

관련 글  자기계발. 11/100 피플웨어

작가는
15년간이나 공들여 모은 자료를 기초로 ‘한국판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방대하고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다고 했으나
과욕이다.
별로 재밌지도 않고,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추측컨대, 소설 구상용 자료 조사 파일임에 틀림없다.

4. 썸데이 서울/ 김형민/ 아웃사이더

출판사 아웃 사이더는
내가 볼 때 ‘좌파 상업주의’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병실에서 읽은 책들”의 2개의 댓글

  1. 발 빠른 놈들.
    문학동네는 장사를 아나보다.
    [퍼레이드]보다 앞선 요시다 슈이치 소설이 나왔더라.
    [열대어]…
    [퍼레이드]의 헛헛한 즐거움을 기억하고 빌렸는데
    그보다 좋으면 기쁨, 재미 없으면 아픔.
    아직 모르겠다.
    더 가볍고, 빠르고, 이만교 말마따나 영화러닝타임만큼
    투자해서 읽을만한 소설로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좋더라.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봤는데 제법 울컥한 구석도 있다.
    가네시로 월드를 이해하면 더 재미있으니까
    [레볼루션 no.3]하고 [GO]도 빼먹지 말아야겠지.
    초심 잃지 않고 인디아나 넘겨주면
    양심에 털 면도한 김에 맛있는 밥 사주께.
    모쪼록 튼튼해라.
    오직 건강, 그게 유가증권이야.
    내 경우 알지? 아무리 외모 출중해봐야 쥐뿔 무슨…

    1. 나는 이 친구, 한지훈 작가의 재기 발랄함이 몹시 부럽다. 부럽다 못해 시기가 날 지경.
      2003년이면 7년전인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는 알지만, 얼굴을 못 본지는 꽤 됐다.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영화 얘기, 책 얘기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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