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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소진 #쇠약 #평정 #아쉬움 #지루함

  • yoda 

며칠 전 아침 일찍 휴맥스빌리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던 날, 옆에 섰던 동지와 잡담을 나누다 불쑥 속마음을 늘어놓게 됐다.

“이만하면 다 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대충은 해봤고”

말을 뱉어놓고 아차 싶었는데, 그가 갑작스런 사랑 고백을 들은 것처럼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 재밌는 게 많을껄요”

삶이 고통이라는 부처의 진리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삶이 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허수경의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들추다가 죽은 어미의 뱃 속에서 태어나 인간의 젖을 먹은 양의 이야기를 읽었다. 단숨에 써내려갔음직한 황량하고 어두운 유라시아 대륙의 어느 외진 촌락이 떠오르는 시였다. 허수경 시인은 일생을 낯선 독일에서 지내며 한국어로 시를 썼고 54세에 죽었다. 그녀의 생은 외롭고 축축한 새끼 양과 다르지 않았다.

작년에 친구가 죽은 이후에 부쩍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자문한다. 혹은 이 질긴 생명은 언제까지 버텨줄 것인가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내가 부덕한 탓이다. 사람들과의 오랜 인연을 툭툭 끊어내도 아깝거나 두렵지 않다.

쉽게 죽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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