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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어제 산 시집을 훌훌 읽다가 가슴을 텅 치고 지나가는 시를 한수 발견했다.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문학과 지성/ 2003.7
하나더.

서른살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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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의 2개의 댓글

  1. 자유로워한다는 강박…이 기막힌 모순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세상이 지정해둔 모든 규칙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시계가 고장나 고작 한번도 울어주지 못할지라도이제 나는 결국 또다른 절반의 어딘가를 나아가야한다는것과연 명백한 현실.. 웁스~ ㅡㅡ
    아..가슴에 꽂힌다 꽂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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