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불교대학반 입학식에서 스님께서 경주로 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기본반 강의에서 가르쳐 주신대로라면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불가의 자연스러운 인연일 텐데 막상 이제 봉녕사에서 스님을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매주 보내주시던 문자와 사진을 저는 몇 번씩 다시 읽어보곤 했습니다. 덕분에 별것 아닌 일에 불편해하던 마음을 가라앉혔고, 인생은 무엇인가 고민하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지도 곱씹게 됐습니다. 특히 (아마도 직접 찍으신 듯한) 사진에 담긴 평온함과 소박한 행복이 늘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21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 번째 암 수술을 마치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더딘 회복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구할 수 없었고, 무심코 집어든 『법화경』에서 ‘불타는 집’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불타는 집’은 제게 큰 위로였습니다. 모두의 집이 불타고 있고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저는 그래도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그런 병 중에 몸이 회복되어 나아지면 불교를 공부해야겠다고 제 인생의 리스트에 추가해 두었습니다.
능윤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정말 밝으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의 미소와 표정은 제가 늘 본받고 싶은 것이었고, 종종 봉사활동에서 뵈었던 김하종 신부님과도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언제나 부드럽고 타인에게 에너지를 주는 분들이셨습니다.
제가 대학반에서 좀 더 공부하게 된 이유도 스님의 강의 덕분입니다.
언젠가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설명하시면서, 들고 있는 핸드폰이 내가 아니고 입고 있는 옷이 내가 아닌 것처럼 이 팔이 내가 아니고 이 몸이 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때부터 저는 하루에 한두 번은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핸드폰이나 옷이 내가 아닌 것은 알겠는데, 어째서 이 몸이 내가 아닌가? 그동안 큰 병을 앓으며 겪었던 무수하고 깊은 고통들은 모두 내 몸이 느꼈었고, 투병 중에 솟아오른 삶에 대한 의문과 의심도 모두 내가 느꼈는데, 어째서 그것은 내가 아닌 걸까?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풀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질문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스님,
부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기본반 강의는 제게 인생에 남을 만큼 큰 의미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원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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