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졸업 기념으로 셋이서 일본 여행을 하게 됐다. 둘째가 뜬금없이 일본에 가서 옷을 사야겠다고 말을 꺼냈고, 일정을 짜다가 큰아들도 함께 하게 됐다. 이렇게 셋이서 해외 여행은 처음이다. 같이 다녀오길 잘 했다 싶고, 일본 시내를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다 컸다 싶은 서운함도 좀 있다. 품을 떠나 제대로 서길 늘 바래왔지만 막상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음을 알게 되니 그 또한 마냥 기쁘지는 않은. 모두 미련이다.
2025년 2월 13일 (목)
- 인친 국제 공항 제1 터미널
- 오전 6시 40분
- 비행기 이륙 시간은 아침 9시 15분, 3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출발했다.
- 몇 해 전만 해도 세계 1위의 공항이었던 인천 국제 공항은 무리한 인력 감축으로 출입국에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세계 최악의 공항이 되었다. 민영화와 노동자의 일할 권리 등에 대해 아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여튼 이러한 인력 감축 덕분에 4시간 전에 도착해도 출국이 버겁다는 소식이 많았는데 워낙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예상보다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네이버에 ‘인천공항 혼잡도’를 검색하면 출발 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
- 인천 공항 주차는 사설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지난 대만 여행에서도 이용했던 ‘고고주차’. 주차 비용이 거의 차이나지 않고 차에서 내려 바로 공항에 들어갈 수 있고 나중에 입국해서 바로 공항까지 차를 가져다 준다.
- 나리타 공항
- 11시 50분
- 특히나 착륙 즈음에 난기류로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고 급강하로 몇차례의 무중력 상태가 있었다.
- 지난 비행기 사고가 떠올라 굉장히 불안했다.
- 나리타 공항에서는 미리 예약해둔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게이세이 우에노역까지 ‘가장 빠르게’ 갔다. 처음 타봤는데 넓고 편했다.
- 게이세이우에노, 서브웨이 우에노
- 오후 1시 40분.
- 점심은 잇푸도(http://4sq.com/9dcA04)에서 라멘을 먹었다. 이치란과 더불어 3대 체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 식사 후에 어떻게 할까 상의한 끝에 우에노 공원과 우에노 동물원을 들르기로 했다. 일정상 우에노에 다시 올 일이 없었기 때문.
- 우에노역에서 코인로커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우에노역의 코인로커는 pasmo나 suica 같은 현지 교통카드가 필요했다. 이걸 발급 받으려면 다시 게이세이 우에노역까지 가야 하니 무리. 다행히 지하철 내에 짐 보관센터가 있었고, 캐리어 2개와 배낭 2개를 160엔을 주고 맡겼다.
- 우에노 공원
- 오후 3시
- 굉장히 넓고 역사가 오랜 공원이었다. 신사, 절, 야구장, 학교, 미술관, 박물관, 동물원 등을 접하거나 품고 있었다.
- 날씨는 10도 내외였으나 바람이 세게 불어 체감 온도는 다소 쌀쌀했다.
- 여행 일정을 잡지 않고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야구장 곁에서 연습 시합을 관람했고 발걸음 내키는 대로 신사에 들렀다가 충동적으로 미술관에 들르거나 했다.
- 동물원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3시 15분부터 대왕 판다 관람이 종료된다는 안내원의 말에 되돌아 섰다. 사실 우리는 판다를 볼 생각은 없었지만 저런 안내를 받고 나니 들어가면 괜히 손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이케부쿠로역
- 오후 6시 40분
- 숙소가 있는 이케부쿠로역에 도착했다. 이케부. 이곳은 진여신전생4의 배경이된 곳이라 지명은 낯익다.
- 같은 이케부쿠로역이지만, 마에노우치선에서 후쿠토신선을 갈아 타기 까지는 20여분을 걸었다. 역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다.
- 숙소는 에어비앤비에서 구했는데, 작은 빌라의 3층에 방이 2개 있고 침대가 3개. 작고 별다른 시설은 없지만 어차피 낮에는 밖에 있을테니 숙소는 그저 깨끗하기만 하면 됐다.
- 시부야
- 오후 8시
-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시부야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이케부역까지 10분, 이케부에서 시부야까지 30분. 점심을 다소 늦게 먹기도 했지만, 미리 예약한 ‘시부야 스카이’ 관람이 7시 40분으로 저녁을 먹고 가기에는 다소 애매했다.
- 시부야 스카이는 예상외로 근사했다. 단순히 타워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넘어서 옥상에 마련된 소파라던가 레이저 쇼라던가 하는 부가 요소들이 사람들을 더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야경을 보며 같은 사진을 찍는 것도 생각보다 흐뭇한 장면이었다
- 스아게 https://4sq.com/2W8P0GI 저녁은 스아게라는 스프카레집을 갔다. 이곳은 본래 훗카이도에 있는 식당인데 인기가 많아 도쿄에도 지점이 생긴 듯 하다. 얼마나 맛있었던지 훗카이도에서는 이틀 연속 방문했던 곳인데, 여전히 맛있었다.
- 많이 걸은 탓인지 충분히 못 잔 탓인지 우에노에서 한번, 이케부에서 한번 다리에 쥐가 나 고생을 했다. 아이들이 주물러주고 부축해줬는데 든든했다.
2025년 2월 14일 (금)
- 라씨네 팜 투 파크 http://4sq.com/1RFBIn8
- 오후 12시 30분
- 하하. 엊저녁 일정이 피곤했는지 아니면 집에서의 습관대로인지 아이들은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그래도 나는 9시 즈음에 일어났지만 깨우지 않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한편 봤다.
- 아점을 먹을만한 몇 개의 식당 중에서 우리는 브런치 식당을 가기로 했는데, 라씨네 팜 투 파크는 식당 앞에 작은 잔디 공원이 있는 곳이었다. 겨울이지만 바람이 없고 볕이 따뜻해 야외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었다.
- 오다이바
- 오후 2시 30분
- 늦게 일어난 탓에 일정 짜기가 애매했는데, 오후는 숙소에서 가장 먼 오다이바에 가서 놀기로 했다.
- 어제부터 큰아들은 발바닥이 아파 걷는 걸 힘들어했다. 평발인데다 체중이 많이 나가 운동을 많이 못한 탓인 것 같은데, 건강 관리를 해야겠다. 운동하기 싫어하는 건 아마 날 닯아서일텐데 같이 등산이라도 다녀야할까 보다. 그래서 도요쓰역에 내려 오다이바까지는 우버를 불러 타고 갔다. 그리고 아픈 발에 도움이 될까 하여 휴족 시간도 몇개 구입했다.
- 후지티비의 구체전망실을 둘러 도쿄만을 내려다보고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오다이바 해상공원에 들러 잠시 쉬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담한 사이즈의 복제본으로 큰 감흥이 없었고 오다이바 해상공원 역시 잔잔한 도쿄만 위에 늘씬하게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볼거리가 없었다. 이어서 덱스의 조이폴리스에 들어갔다. 조이 폴리스는 일본 최대의 오락실이라는 평이 있어서 과감히 선택했는데 입장권은 인당 1,500엔, 패스포트는 인당 3,500엔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고보니,… 이곳은 일본의 유명 IP를 소재로 한 실내 놀이공원 같은 곳이었다. 우리로 치면 작은 롯데월드랄까? 당연히 입장권으로는 체험할 수 있는 어트랙션이 없고 그나마 다른 탈 것 역시 매우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 이제 다이버시티의 실물 건담을 보러 갈 차례. 5시 정각에 변신이 있어서 총총걸음에 달리기까지 더해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5 – 6년 전에 아이들과 한참 건담을 만들던 때가 있어서서인지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유니콘 건담의 변신을 지켜보려는 사람들도 족히 100여명 넘게 모였고 모두들 같은 포즈로 휴대폰을 높이 들어 촬영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이어 건담베이스에 들러 출시 이후의 거의 모든 건담을 둘러보고 큰아들은 건프라를 하나 구입했다.
- 오는 길에 신바시역에서 슈크림빵을 샀다.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관심이 가면 경험해보는 것, 그것이 여행의 재미일 것이다.
- 저녁은 아키하라바라에 가서 먹을 계획이었지만 역시 다들 배가 고팠다. 다이버시티의 교토 규카츠 (https://4sq.com/2Meh1ai)에 들어갔다. 안심, 등심, 우설, 작은 화로에 취향대로 구워 여러 소스에 찍어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중 우설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특이한 식감이었다.
- 아키하바라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키하바라에 들렀다. 메이드카페를 갈 생각이었는데, 큰아들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
- 피규어에 관심이 많은 큰 아들은 라디오센터며 만다라케 같은 곳을 가고 싶어했는데 아키하바라 대부분의 가게들이 9시 전후에 문을 닫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아쉬워하며 내일 아침에 다시 오기로.
2025년 2월 15일 (토)
- 각자의 관심사대로
- 오전에는 각자의 관심사대로 다니기로 했다. 작은 아들은 신주쿠의 옷 가게들을, 큰 아들은 아키하바라의 피규어 상점을, 나는 미술관을 둘러봤다. 도쿄의 복잡한 지하철을 구글맵 하나만 들고 찾아다니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됐는데, 둘 다 시간이 모자란 듯 열심히 쏘다녔다.
- 신주쿠 오타 우키요에 미술관
- 오전 11시 11분
- 우키요에는 하이쿠와 더불어 에전부터 관심이 많은 일본 예술이었다. 목판으로 찍어내는 정교한 다색 판화.
- 관장인 오타는 오래 전 우키요에에 관심을 갖고 전 세계에서 작품을 사모았다고 한다. 대략 12,000여점의 작품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미술관은 크지 않았지만 시대별 흐름에 맞춰 주요 작가의 작품들을 잘 전시해두었다. 예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연작과 특별작 등은 절로 흥미가 일었는데 과감하고 정밀한 구성에 기법이 마음에 들어왔다.
- 신주쿠 산초메역
- 오후 1시 20분
- 신주쿠는 그야말로 번화가였다. 언젠가 온 적이 있었겠지만 지구 상의 온갖 명품 브랜드는 다 모여있었다. 그런 거리를 목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휘적거리는 것은 역시나 여행의 묘미다. 어떠한 정보도 거리낌 없고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 속에 들어온다.
- 만나기로 한 아이들은 오지 않고 나는 신주쿠 역 근처를 배회했다. 전쟁 반대 시위를 하다가 붙잡혀간 7명의 교토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유인물과 피케팅이 있었고, 사회의 부조리를 철폐하자는 정체 불명의 연설도 있었다.
- 트라토리아 타볼로 디 피오리 http://4sq.com/n9qFla
- 오후 2시 40분
- 원래는 초밥을 먹기로 했으나 적당한 집을 찾지 못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갔다. 마르게리타 피자, 콘스프 파스타, 봉골레를 시켰다. 여기서 일본 특유의 집요하고 꼼꼼한 모습을 보게 됐다. 혹시 견과류가 있다면 빼달라는 요청에 홀의 스태프가 모두 모여 회의를 했고 이후 그들은 모든 메뉴의 성분표를 들고와서 재차 확인을 받았다.콘스프 파스타는 스프와 파스타를 섞은 맛이었는데 특이하긴 하나 못 먹을 맛은 아니었다. 봉골레는 해감이 좀 돼 불순물이 씹히기도 했고
- 다만, 프랜차이즈가 아니면서 꽤나 오래도록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가게라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반면 한국에는 프랜차이즈가 너무 많다. 아마도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채 퇴직과 더불어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듯 싶다.
- 신주쿠 교엔
- 오후 4시
- 언어의 정원을 본 이후 두번째 방문인데, 여전히 예쁜 공원이다. 느슨한 여유가 있다고나 할까? 오래됐지만 낡지 않았고 아주 열심히 꾸미지 않았지만 조화롭고 아름답다.
- 큰아들은 더이상 걸을 수 없어 입구 즈음의 벤치에서 쉬었고 둘째아들과 한바퀴 돌아 봤다. 호수며 정자며 광장이 예전 그대로였다. 벚꽃이 벌써 피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리를 펴고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 택시를 타고 오모테산도로 향했다
- 오모테산도
- 오후 6시
- 도쿄의 젊은이들이 모두 모였나 싶게 인산인해. 그러나 큰아들은 걷기 힘들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어 먼저 숙소로 향했다
- 둘째와는 오모테산도의 모든 거리를 생선뼈 훑듯이 지나다녔다. 옷가게와 카페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도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산책 도중에 혈당 스파이크가 왔고 잠시 앉아있는 동안 아들이 편의점에서 오렌지 쥬스와 초컬릿을 사다 주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아들에게도 그러했기를.
- Yakiton Hayashiya http://4sq.com/Wo1xNB
- 오후 8시
- 늦은 저녁은 현지의 돼지고기 꼬치구이 집으로 갔다. 무알콜맥주와 콜라를 마시며 좋은 여행을 위한 건배를 나누었다. 직장인들만 가득한 술집은 처음일텐데 아이들은 이런 풍경이 재밌었다고 한다. 3년 후에 다시 와서 그때는 다같이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