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민준이와 고속버스로 여행을 간다. 지하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센트럴터미널에 도착, 3시간 20분이나 걸리는 순창행 고속버스에 오른 지 벌써 2시간 30분째이다.
버스 타기 전 들른 커피빈에서 오렌지 쥬스도 사고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목도리, 물티슈, 빼빼로와 젤리, 과자 한봉지까지 준비물도 꽤 된다.
민준이는 정안 휴게소까지 가는 동안 내 허벅지를 베고 내내 잠을 잤다.내복을 입은데다가 외투를 깔고 허벅지를 통해 체온이 전달되니 민준이 이마와 목에서는 땀이 흐른다. 읽던 책으로 부채질을 해주며 땀을 식혀본다. 부모의 마음은 다 이럴게다.
휴게소에 내려 밤과자를 먹은 이후로는 쌩쌩헤졌다. 가을길 노래도 하고 이제 얼마나 남았느냐며 계속 말도 건다. 오렌지주스도 먹고 과자도 먹고 젤리도 먹었다. 땀이 나길래 윗도리을 옷울 잠깐 벗자고 했더니 창피하다고 싫단다. 네살인데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옷을 벗는 일이 창피한 줄을 안다.
아이들과 이렇게 다니고 이야기하고 챙길 시간이 내게는 얼마나 남은 것일까. 인생은 생각하면 할수록 덧 없다.
아이들이 내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은 제 아비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것인가. 잘 살자고 다짐해보만,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닐텐데, 그냥 이렇게 흘려 보내야 할까…
인생은 풀리는 방정식이라고 얘기하지만, 무엇에 도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 감흥도 두려움도 점점 희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