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체 게바라를 좋아한다. 20세기의 마지막 게릴라. 성공한 혁명에 안주하지 않고 죽음으로 끝나는 또다른 전투를 시작한 혁명에의 의지와 신념. 투철함과 명석함, 솔선수범의 태도. 물론 시가를 빼어문 넉넉한 미소와 턱수염도 좋아한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헌신하겠다.

나는 한국의 락밴드 들국화를 좋아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음악성. 내 청소년기를 위로해준 허스키한 목소리, 거친 가사와 긴 파마머리의 청년들.

나는 소설가 최인훈을 좋아한다.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풍경을 그려냈고 그 결말의 공허한 광장의 가능성을을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새 화투를 치는 아버지와 딸을 좋아하고 제목부터 절절한 희곡을 좋아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이를 좀 더 먹고 나니 이념이란 게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정한지 조금 더 알게 됐다.

나는 시인 허수경을 졸아한다. 마치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사방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외로움과 슬픔을 좋아한다. 첫번째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좋아한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도 좋아한다. 과거와 더 오래된 과거와 우주와 바다를 넘나드는 그녀의 시상과 세상을 좋아한다.

시인 장정일을 좋아한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햄버거로 시를 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재기발랄함과 무모한 청춘의 당돌함과 게으름을 좋아한다.

시인 최승자를 좋아한다. 그녀는 죽음이다. 시인 박남철을 좋아한다. 이중적이다.

어떻게 해도 따라하기는 커녕 시늉도 못 낼 이들의 감수성과 문장과 관조의 시선과 세계관과 삶을 좋아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마침표 하나가 주는 커다란 울림은 그들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임의 증거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환상적인 극장을 좋아하고 글과 음악과 연기와 배경과 소품이 어떤 하나의 목적지로 향하는 집단적 맹목을 즐긴다.

나는 읽기를 좋아한다. 현실을 넘어 과거와 미래로, 꿈조차 어떤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재생해준다. 그 자체로 완벽한 매체인 책 자체도 좋아한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책의 먼지 냄새와 맘에 드는 제목을 발견하고 첫장을 열어볼 때의 설레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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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쇼팽과 베토벤과 모짜르트와 비발디와 바흐와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한다.

나는 인라인 스케이트와 수영과 자전거를 좋아한다. 그 셋은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이기도 하고 열심히 했던 운동이다.

2025년 8월 6일

나는 뜨거운 한여름의 파란 하늘과 하늘을 뒤덮은 흰 구름을 좋아한다. 유년 시절에 구름은 상상력을 펼여보이는 흰 도화지였다. 골목길에 앉아 물끄러미 쳐다본 구름 속에는 호랑이나 사자, 용 같은 동물이 나타났고 이내 그것은 곰이나 너구리, 독수리 같은 형상으로 바뀌었다. 비행기와 로보트도 있었고 행진하는 군악대와 사람 얼굴이 나타날 때도 있었다.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이 없었지만 또 올해처럼 구름 가득한 하늘도 없었다. 최근에 찍은 구름 사진들.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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