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년간 웹서비스 기획자로서 해왔던 일들이다.
- 웹 서비스의 핵심 가치를 정의하고
- 시장을 분석하고
- 국내외 경쟁 서비스를 베치마크하고
- 서비스의 포지션을 차별화하고
-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 3개년의 P/L을 잡고
- 출시 계획을 세우고
- 개발 계획을 검토하고
- 마케팅 채널과 믹스를 정리하고
-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고
- 생태계 내의 스테이크 홀더를 위한 명분을 만들고
- 출시하고 사용자의 반응을 보고 패치하고 PR 하고
3월 11일부터 내가 속한 조직은 공식적으로 ‘노동조합’으로 바뀌었고 이제 노동조합에서 할 일들이다.
- 회사와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임금 협약과 단체 협약을 준비하고
- 노동 조합 가입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해 직원들의 근무 환경과 안전을 위해 논의하고
- 다른 IT 회사의 노동 조합과 연대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피켓을 들고 노조 가입을 독려하고 이벤트를 추진하고
-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는 조합원을 면담하고
- 신규 조합원을 만나고 조합원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고 조합원의 직계 상가에 조문하고
-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노동자 대회에 참석하고
- 조합 설립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 임금 교섭의 중간 보고를 위해 노보를 배포하고 행사장을 만들고
- 설명 없는 근무제 변경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하고 사측에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전혀 다른 일들이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생각보다 재미있다.
어제 선동학교에 가서 1박 2일 교육을 받으며 다른 노조의 간부들을 만나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KCC 노조의 지회장은 타임오프 때문에 두달 넘게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었고, 여수산단 노조는 생산 물량 감소로 인한 공장 폐쇄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모두들 생존을 걸고 조합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나는 아직은 평온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노동조합의 일을 선택한 이유는,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남은 시간을 보다 의미있는 곳에 쓰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삶은 얇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으로 어느 때라도 와장창 하고 깨질 수 있고 그러면 누구라도 심장을 옥죄는 차갑고 어두운 심연과 마주해야 한다. 그 불완전한 한걸음, 한걸음이 우리의 삶이고 곧 죽음이다. 급작스런 생의 단절, 그 앞에 놓인 죽음을 응시하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후회한다.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 이렇게가, 나에게는 노동조합이고 봉사활동이고 무엇이라도 나보다는 남을 위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살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
세번째 삶은 써 놓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노동조합일을 하는 구려.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으니 영화 처럼 세번이나 사는 삶을 응원하오.
3개월 밖에 더 살 수 없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때에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후회가 없을까?
새로 선택한 일은, 적어도 그 기준에는 벗어나지 않는다네. 얼굴 본 지 오래됐는데 날 한번 잡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