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읽고나서 그의 글이 마음에 들어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었습니다’도 좋았고 산문집 ‘운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도 좋았습니다만, 가장 마음에 든 책은 바로 이 책입니다.
결코 나이가 많다고 볼 수 없는 이 시인은 어쩌다가 노포를 좋아하고 어쩌다가 노문인들과 교류를 갖고 어쩌다가 조지훈과 박목월의 교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하고 따듯하며 또 깊은 글을 보여 줍니다.
시를 쓰는 짬짬이 기록한 글이거나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나 일상의 여러 감상을 적은 글들이지만,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이 드러나서 읽는 이는 절로 마음을 놓게 됩니다. 계절 산문은 앞으로도 계속 박준의 시리즈처럼 나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누나를 먼저 떠나 보낸 것은 산문에도 시집에도 나오지만 이 글에서도 누나에 대한 그리움은 한껏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여섯살이었고 누나는 여덟 살이었다.
이월 산문
학원 가는 길에 누나의 손등 위에 뚝뚝 흘린 눈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별한 허수경 시인에게 선물 보낸 맷돌 이야기도 (한번도 본 적 없고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익히 아끼는 둘 사이의 비밀을 내게만 알려준 기분이 들어 흐뭇했습니다.
그래도 시만한 선물은 없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선배의 선물을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받았다는 사실입니다…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니까요.
선물 – 수경 선배에게
그 외에도 떡볶이 정식과 단품 떡볶이의 가격이 다른 데도 같은 구성으로 나오는 옛 이야기도 재밌었고 (사실 그 후에 학생들이 정식을 계속 시켰다는 이야기도 더 와닿았습니다)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거야’라는 할머니의 한마디는 굉장히 힘이 있었습니다. 조지훈과 박목월의 경주 여행과 그들이 주고 받은 시는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였음에도 새삼 부럽다고 멋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술 생각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끝으로 ‘우붓에서 우리는’의 한 구절을 옮기며 박준의 다음 글과 시를 기다립니다.
대기 가득 물기가 스며 있던 곳, 오토바이 기름 냄새가 밤낮으로 진동하던 곳, 그곳에 우리는 함께 있었다. 손에 땀이 차면 바지에 닦아가며 다시 손을 잡았고 끼니마다 맥주를 함께 마시며 좁을 골목을 네 발로 촘촘히 걸었다.
우붓에서 우리는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