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ing (2018) 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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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내 점수 : 9.0

지난 여름 한동안 CGV영화앱 1위를 차지했던 영화. 관심은 갔지만 어설프지 않을까 하여 관람은 하지 못했던 영화. 예를 들어, 쓸데없이 리눅스 부팅화면이 나온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우려와 달리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말끔한 영화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도 꽤 있었고, 휴대폰과 노트북이 없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도 흥미진진할만큼 이해하기 쉬웠다.

아이폰과 맥북, 페이스북, imessage와 페이스타임, 구글, 구글맵, 텀블라, 인스타그램, 벤모, 유캐스트, 트위터 까지 익숙한 서비스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졌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무언가의 모니터를 통해 등장하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이 세계의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잘 그렸다.

작은 단서 하나 놓치지 않게 설계된 시나리오도 맘에 들었고 죽은 엄마를 사이에 놓고 마음을 가리는 아빠와 그렇지 않은 딸에 대한 묘사, 작은 갈등을 통한 가족애의 표현도 과하지 않았다.

‘도구’로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쓰는 게 어떤 것일까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으로서 사용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좀 더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허수경이 갔다. 혼자서. 먼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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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존경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그녀의 슬픈 웃음 소리 ‘킥킥’을 듣고나서부터 나는 그 발랄한 슬픔에 푹 빠졌다.

들춰보니, 몽생 취사하고, 불취불귀하여, 모든 게 흐릿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에 어느 여대의 교수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무언가 뒤섞인 뿌연 기억이었나 보다. 독일로 유학을 간 것도, 거기서 현지인 교수와 결혼을 한 것도, 암에 걸린 것도, 아무 것도 알 지 못했다.

지금 보니 누님이라도 불러도 좋을 나이였는데, 좋은 작가가 떠났다.

위암 말기를 선고(어째서 선고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받고 오래 전 출간한 산문집을 다듬었다고 했다.

가는 길에 도서관에서 책을 열어봐야겠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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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걱정인가 하면,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게 걱정이다.

한 이십년 비슷비슷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년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 지 솔직히 가늠되지 않는다.

이게 불안의 근원인데, 좀 더 자세히 파보면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사실 내가 아니라 내가 꾸린 가정이다.

특히 아이들 말이다.

야생의 초원이나 세기말 좀비 가득한 혼란한 세상에 내놓으면 당장이라도 사냥당하거나 끝내 굶어죽을 것 같은 아이들. 사실 아이들은 내 생각보가 훨씬 강해서 이게 다 부질없는 염려일 지도 모르겠지만, 눈을 감기 전까지 자식 걱정을 하는 게 부모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도 범인이니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인류와 지구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같이 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알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되 타자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사람. 자기 몸의 소중함을 깨달아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않고 병과 고통을 이겨내는 의지를 갖춘 사람, 역사, 철학, 문학, 미술, 음악, 고전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옳은 일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을 내 줄 줄 아는 의무감과 여유.

적어 놓고 보니, 그렇게 살지 못한 나의 희망을 투영한 것도 같다. 아니, 그렇다.

저렇게 키워준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없어지는 것인가?

오래 전에 읽었던 시집 ‘막연한 미래에 대한 몽상과 반역’을 다시 꺼내야 할 때인가 보다.

그런데 저 시집을 쓴 건, 최근 성추문으로 시끄러웠던 이윤택이라, 꺼내 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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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아.

계속해서 개를 기르다 보면 여러 개들의 생과 사를 지켜보고 이별을 겪게 되지.

사람은 개의 빛나는 생명과 피하기 힘든 종언을 자신의 인생에 비춰 보면서 살게 되지.

사람은 개의 생과 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아.

장정일의 독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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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읽기에 대해 엄청난 의무감을 가지고 있고 늘상 부족하고 모자르다 생각하고 있다.

2006년에는 100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그 해 연말에는 55권의 책을 읽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1년에 55권은 주에 한 권 정도 읽는 템포. 2006년에는 야후에 있던 때였고,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전 세계 인터넷 쇼핑의 표준이 될만한 상품 페이지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책 읽기에 게을러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더위를 피해 찾아간 도서관에서 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하나를 펼쳐 들었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광범위한 주제의 지식에 대한 욕망은 그야말로 순수한 갈구, 그 자체라고 생각된다. 거기엔 어떤 욕심도 없고 의도도 보이지 않고 지식에 대한 탐구, 그 자체를 따르는 책과 책 읽기가 있을 뿐이다.

장정일이 책 읽기에 부여한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아 옮겨둔다.

‘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시민은 대중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다른 의견을 가지면서, 또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데, 독서가 이를 가능케 한다.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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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40도에 근접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는 1분도 견디기 어렵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일백 몇 십 년 만이라고 한다. 혹은 기상 관측 이래로 최고로 높은 기온이라고도 한다.

지난 겨울 한파를 같이 놓고 보면 70도가 넘는 온도 차이가 있다 하고, 어떤 앵커는 이런 한파와 폭염이 지구 온난화에 따르는 것이라 우리 삶의 일상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다들 밤 잠을 설쳐 생기가 없을 뿐 아니라 의욕도 떨어져 효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인류는, 중간고사를 코 앞에 둬야 책장을 여는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고 펑펑 놀아 제끼다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꼴이 말이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북극곰이 설 얼음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수십년 째인데,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이 땅의 환경과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냐 물으면 나 역시 답이 궁색하다.

폭염 만큼 답답한 것은, 인류의 미래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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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자살했다.

놀랍기보다는 의문이 먼저 드는 죽음이다.

깊은 통찰력으로 언제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잊지 않던,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찾기 힘든 좋은 정치인 중의 한명이라 생각했는 데 말이다.

흔히들 ‘죽을 결심으로 살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냐’는 말을 종종 내뱉곤 하는데, 이렇게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광주에서 그 많은 사람을 해친 전두환도 저렇게 뻔뻔하게 큰소리를 치며 사는 세상인데 말이다.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학적 수준의 결벽증을 이제는 좀 벗어 버렸으면 한다.

아직도 뜯어내서 치우고 고쳐야 할 일들이 온전한 것보다 백배 천배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답답하고 갑갑하다.

며칠 전 D형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인다.

“의원님,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세상은, 아마  힘들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볼테니 신경쓰지 마시고요.”

D형,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그러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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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D 아니?”

내일 먹을 콩국수를 위해 불려 놓은 콩의 껍질을 까면서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물어 왔다.

“D형? 알지, 왜?”

“얼마 전에 죽었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 나이에 흔히 볼 수 없는 세련된 귀걸이와 옷차림에 내심 부러워 할만큼 날씬하고 센스있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은 전혀 맥락이 닿질 않았다.

“교통사고야?”

“아니, …자살로…”

어머니는 답하기 전에 한참의 시간을 두었고, 입을 열고서도 자살이라는 단어 앞 뒤에 또 한참의 여백을 뒀다.

나는 그 빈 시간 동안 천천히 얼어 붙어 사고가 하얗게 정지해 버렸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귓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눈 속에는 형의 20대 모습이 생생히 떠 올랐다. 한참 팝송에 빠져들어 Nolans의 Sexy music을 흥얼거리던 초등학생에게 가사의 뜻을 물어보며 장난꾸러기 미소를 짓던 형의 얼굴 말이다.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가장 한참일 때의 얼굴이 생각난 것일까? 자살이라는 단어가 떠 올리는 무겁고 우울하고 끔찍스런 감정을 상쇄시키려는 무의식의 반동이었을까?

이후 전해 들은 D형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도 흔한 것이라 오히려 와닿는 것이 거의 없었다.

택시, 이혼, 당뇨, 뇌경색, 홍콩, 아들, 연금…

형은 이혼한 아내가 잠 든 것을 확인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어디에선가 목을 달았다고 했다. 죽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형의 그 결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간절히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고 죽음이 단숨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명동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흰 나팔바지를 유행시켰다고 했고, 약물 중독의 경험이 있었고 오른손 손가락에는 王, ?, ! 문신이 있었다.

“그거 왜 했어?” 라고 물으니 어디가서 말하지 말라며 조곤조곤 속뜻을 말해주고 곧 지울거라고 했다. 초등학생일지라도 남자를 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 유쾌함과 대범함이 사람을 으쓱하게 만들곤 했었다.

나는 아마, 형의 그런 성격과 소통 방식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D형,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그러면 좋겠어.”

패트릭 스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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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비릿하게 계속되고 있다.

어두운 하늘의 어딘가에 낡은 문이 생기고 그 문을 열고 심장 모양의 마스크를 뒤집어 쓴 마법사가 나타난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름 밤이다.

왜 나는 이 시간에 패트릭 스웨이지를 검색하고 있을까.

모처럼 일찍 잠 들기 위해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운 지 두시간 째, 영혼은 띠끌 하나 없이 맑다. 잠은 커녕 이대로 원고지 1,200매짜리 장편 소설도 쓸만한 각성이다.

여튼, 패트릭 스웨이지는 57살에 췌장암으로 죽었다. 몇 편의 영화와 몇 편의 노래를 남겼고, 위대한 배우라고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세대 몇몇 사람들에게는 꽤 근사한 배우로 남아 있을 게다.

사랑과 영혼이 아마 그랬다. She’s like the wind도 그럴 테고.

모르겠다.

일상이 무너지면, 어떤 어둠이 다가올 지 잘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