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시 몇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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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윤동주의 서시 너의 어깨에 기대고 […]

오뉴월.김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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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김광규 우리가 만들어낸 게임보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장끼 우짖는 소리 꾀꼬리의 사랑 노래 뭉게구름 몇 군데를 연녹색으로 물들입니다 승부과 관계없이 산개구리 울어내는 뒷산으로 암내 난 고양이 밤새껏 쏘다니고 밤나무꽃 짙은 향내가 동정의 열기를 뿜어냅니다 환호와 야유와 한숨이 지나간 자리로 남지나해의 물먹은 회오리바람 북회귀선을 넘어 다가오는 소리 곳곳에 탐스럽게 버섯으로 돋아나고 돼지우리 근처 미나리꽝에서 맹꽁이들 짝 […]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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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는 먼집 당신…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의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

기우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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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

6/100 내 생의 중력 (홍정선 강계숙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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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 홍정선.강계숙 엮음/문학과지성사 강계숙의 해설이 명문이다. 작가의 숙명이자 권리이자 천형인 글쓰기, 더 좁혀서 시인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깍아내는 시에 대한 의미를 이렇게 길게 쓰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뭐랄까 평론가의 객관적인 입장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한명의 독자가 느끼는 열정을 토로한 뉘앙스다. 현학적이고 다소 장황하지만 끌린다. 예민한 자의식은 섬세한 감수성의 동력이지만, 마르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