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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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일이 내 생에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한 적 없었다. 마치 통일처럼 아주 먼 훗날에나 가능할 거라고. 한 30년 더 지나면 서로의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희석되고 낡고 바래져 우리 아들들은 남과 북이라는 걸림 없이 오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남과 북이 하나로 연결되어 남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백두산에 오를 수 있고 북한 사람들도 언제든 제주도에 놀러올 수 있는 시대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낭만적이고 추상적이라 할 지라도 오늘만큼은 땅에 발 딛지 않은 통일의 몽상가가 되고 싶다.

그러고보니 한국의 신문이나 언론을 보지 않은 지 꽤 됐다. 한겨레나 경향까지도. 한국 언론은 논조나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젠다를 전달하는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봐야할 기사, 알아야 할 논제를 취급하지 않는 언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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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생생한 꿈을 꾸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 새벽에도 그랬는데 그 때 만일 눈을 떴더라면 이미 훤히 밝은 밖을 내다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꿈에 작은 할아버지가 나왔다.

할아버지도 아니고 작은 할아버지라니.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의 몇개월을 보낸 기억이 있다. 아저씨와 고모들이 끔찍히도 나를 아껴준 것은 잘 알고 있고 날 위해 보송보송 토끼풀을 말려준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 작은 할아버지와는 어땠었나.

내게는 그저 집안의 큰 어르신이었고 그에게 나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안쓰러운 손주였던 탓에 말을 섞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멀리서 나를 지켜 보던 시선을 알고 있었고 어쩌다가 백점짜리 시험지나 성적표를 들고 갈때면 흐뭇한 미소를 지어주시던 기억도 있다.

꿈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나는 아직 그 나이는 아니어서 왜 그런 꿈을 꾸게 됐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러빙 빈센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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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내 점수 : 9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체온과 그들이 고흐를 얼마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유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발상,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성숙한 문화와 환경, 그리고 이런 작품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부러운 영화다.

고흐의 죽음을 살펴보다가 그것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만들어내고, 그 흔적을 따라가면서 다시 고흐의 내면을 파고드는 이야기의 전개도 매우 흥미로웠다.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야.

유서 한장 남기지 않은 고흐의 마지막 몇마디. 이제 관객에게는 고흐가 어떻게 죽었는 지 그리고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별반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인간적인 예민함, 아픈 마음과 견딜 수 없는 고통,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정, 그래서 귀를 자르고 자살을 시도한 고흐의 자학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누구의 형이며 누구의 친구이며 누구의 아들이었던 자연인 고흐를 바라보게 만든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 생각한다.  고흐가 어떤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는지 알게 되면서 모든 갈등과 의심은 저 뒤로 사라져 버리고 고흐와 그의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I want to touch people with my art. I want them to say ‘he feels deeply, he feels tenderly’.

고흐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온화함이 그가 진심으로  바랬던 것이고 그리하여 그 마음이 화폭에 온전히 남아있음을 이제야 알게되었다.

8년 동안 800점의 그림을 남기고, 그 작품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깊이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도 조금은 편안해 지려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starlit starlit night, 평온한 음악에 한참동안 나를 적셨다. ‘좋다’ 하는 생각만으로 가득차서 멍하니 앉아있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다.

영화가 아주 맘에 들어 좀 더 길었으면 싶었는데 작업 과정을 상상해보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다.

헤드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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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까지만 해도 분기에 한두통의 전화를 받았었는데,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 업계에서는 이제 최고령에 속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어쩐지 속이 좀 상한다.

마침 오늘 한통의 전화가 왔는데 생각보다 반가웠다.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

Social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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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기사.

저커버그 이 한마디가 페북을 ‘악마’로 만들었다.

옮겨 적으면서도 기사 제목에 대해서는 감탄하게 된다. 현재의 이슈를 ‘악마’로 정의하면서 그 책임이 저커버그에게 있는 양 몰아가는 자극적인 제목이다.

140자의 혁명이었던 트위터, 체크인과 메이어로 아직 남아있는 포스퀘어, 인스타그램. 나도 한 때는 이런 서비스를 통해 나의 24시간을 모두 노출한 적이 있었다.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두 기록하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여 서로의 영감을 주고받는 라이프 로깅.

일부 흔적들은 아직 이 블로그에도 남아있지만, 실시간 라이프 로깅은 생각보다 깊이가 없었다. 기록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 거의 없었고 기록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서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점에 새로 도착하면 체크인을 해야 하고,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는 지 리뷰를 살펴보고, 요리의 향과 모양새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진 찍고 트위터에 올리느라 바빠지는 것 말이다.

그리고 자주 접하게 되는 개인 정보 유출과 SNS 때문에 뜻하지 않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보게되면서 나는 계정을 폐쇄하거나 나만 볼 수 있도록 권한을 변경했다. 그것은 업무용이거나 정말로 개인의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주제의 콘텐츠를 살펴보는  용도였다.

퍼거슨 감독의 명언도 있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볼 시간이 있다면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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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내 점수 : 4.0

온갖 자료 조사를 통해 아타리부터 스트리트파이터, 오버워치, 아키라, 샤이닝, 킹콩, 터미네이터, 건담, 고질라 등의 대중 문화 코드를 집어넣었지만, 그래서 뭐? 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아, 일본 자본이 많이 들어간 것은 확실히 알아 볼 수 있다.

강철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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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내 점수 : 6.0

초반부 너무 많은 설정과 인물들이 겹쳐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갈등 구조가 선명해지면서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진전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 논의 덕분에 오히려 영화의 리얼리티가 떨어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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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10점
신경숙 지음/창비

마음이 허허하다.

책장을 덮고나니 ‘엄마’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이 가득하지만 그게 반드시 뭔가를 후회하거나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 거나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 이런 삶도 있었지, 모양은 다르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다 이럴거야, 이런 면은 우리 엄마랑도 비슷하네, 나도 언젠가는 이런 후회를 하겠지…

봄 햇살이 드는 창가 침대에 앉아 작가의 말,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아쉼이 컸다. 더 읽고 싶은데. 이런 아쉬움을 주는 책을 읽은 것은 또 얼마나 오랫만인가. 읽을 분량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마음 껏 읽지도 못한 채 매번 기대감으로 책을 집어드는.

2008년에 출간된 소설을 2018년에 읽고 있지만 지난 시간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28년에 읽는다 해도 아마 비슷하겠지. 그때는 ‘너’의 마음에 더 가까워졌을 테고 한편으로는 ‘당신’의 모습과도 아주 조금은 비슷해져이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랑 같은 방에서 보냈던 한달 여의 시간 동안 맛 본 ‘완전한 행복감’을 전달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작가가 느꼈던 충일한 감정은 나도 언젠가는 경험했을 터인데, 아주 희미한 흔적만 남겨져 있는 것 같이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묵은 숙제를 하듯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은 딱히 뭐라 평가할 수 없다. 깊고 넓진 않지만 그렇다고 쉬이 마를 것 같지는 않은 냇물, 특별히 굽이치고 깍여나가고 합류하는 지점이 없어도 그 긴 냇물을 쉼 없이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색의 감정들이 마음 속으로 모두 쌓인다.

짐짓 울컥하는 장면들이 꽤 많았는데, 감정의 소요가 부담스러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읽었다.

가슴에서 무언가가 일렁일렁한다. 며칠간은 다른 책에 손대지 않고 이 잔잔한 출렁임을 유지하고 싶다.

ps. 독서법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 깨달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 마음에 드는 문구, 배우고 싶은 문구, 눈물이 났던 문구, 그런 문장들을 만나면 나는 책의 윗 모서리를 조금 접어두는 식으로 표식을 남겼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밑줄을 긋거나 모서리를 접어두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쓴다는 행위 자체를 내 일상에서 제외해 버린 지 오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