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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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온전하게 남아있는 자의 몫이다.가끔 그들의 얼굴이, 그들과의 대화가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라 가슴을 후빈다.
시간은, 아무 것도 지우지 못한다. 시간은 다만 덧칠할 뿐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더욱 불행해 질 것이다.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문신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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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불현듯 생겼습니다.

문신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거의 동시에 내 머리엔 내가 가져야 할 문신이 떠올랐습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최인훈의 소설이 있었지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깨와 겨드랑이 중간쯤에서 살갗을 비집고 고개를 쳐드는 날개,라기 보다는 비늘에 더 가까운.

…..화려하게 꾸민 옷 같은 몸을 가지고 있어요. 양어깨에는 용틀임하며 올라가는 용의 비늘들이 소용돌이치고 있고, 팔에는 인도의 윤회의 수레바퀴 같은 황금빛과 검은빛 색채의 동그라미가 타오르고 있으며, 등에는 온통 삶과 죽음을 지배하는 동양의 신들과 호랑이와 용과 꽃들이 만발해 있어요. 그는 그것을 ‘바디 수트’라고 불러요. 육체가 타오르는 옷이에요…..남자는 오늘이 자기 생일이래요. 그래서 자기 생일선물로 새 날개를 문신해 갖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자기 생일날 문신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요. 자기가 자기에게 선물하는 것이지요. 운명을, 다시 태어남을, 새로운 재생의 힘에 넘치는 이미지를, 고통을 뚫고 피를 보고서 다시 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을 때가 있어요…..나의 눈 양옆에는 세 방울씩 눈물이 박혀있다. 그것은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문신 눈물이다. 코울러 티어즈라는 것이다. 담즙의 눈물이라는 문신이름이다…..
척추를 중심으로 등 한복판에 검은 빛살처럼 확 퍼져 있는 쥰꼬의 뱀비늘 문신이……

무릎에 국화꽃 문신을 한 쥰꼬…..

그들은 동반자의 표시로 왼쪽 복사뼈 위에 똑같은 까만 새 날개 문신을 나눠 갖고 있다……

김승희/ 백중사리/ 창작과 비평 1997 겨울호/

東洋 3國의 북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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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무용단 제74회 정기공연 (97.11.29 — 12.2)

東洋 3國의 북춤

0. 우연하게
생긴 공연티켓 덕분에 근사한 눈요기를 하고 난 다음에 생기는 욕심은, 맛난 음식을 먹고 난 후의 그것과 같습니다. “다음에 또….”

보다 효율적인 소비, 먹고 마시는 이상으로 삶의 활력을 주는 소비.
좌석은 물론이거니와 입석도 가득 들어찬 국립중앙극장은 무척 훈훈했습니다.1.중국
山西省 봉(실사 변에 받들 봉)州大鼓秦王点兵(진왕이 병사를 뽑다)라는 작품으로 시작된 중국의 북소리는 호두를 굴리다, 늙은 쥐가 결혼하네, 북,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다, 황소가 호랑이를 놀리다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색이 붉은 색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 주는 듯한 붉은 큰북에서 울리는 소리는 거대한 중국대륙의 이미지, 바로 그것입니다. 잔 기교보다는 굵직한 선과 모습이 기운차게 느껴졌습니다.
무대가 열린 후 첫 작품인 秦王点兵의 멜로디는 무척 낯익은 것이었는데, 영화 황비홍의 주제가인 '男兒當自强'의 음률과 똑같더군요. 무대 뒤편에 커다랗게 서있는 (진시황릉에서 발견된) 대형조각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늙은 쥐 결혼하네 에서는 아주 조그만 북들을 두드려 생쥐가 도망가는 형상을 그럴싸하게 묘사하더군요, 그 외에도 개선가를 부르며 귀대하다 등등 전체적으로 좀 지루하다 싶은 감은 있지만 대륙의 커다란 모양새가 느껴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2. 일본
야고로 돈 북춤 공연단
우까레 라는 작품으로 시작한 일본의 북소리는 굉장히 집중력 있게 들려옵니다. 오고시, 오하라, 미노리, 大太鼓, 劍舞, 오히토 등등의 작품을 공연했습니다. 북들이 모여서 일체화된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소리들이 매스게임을 벌인다고나 할까요?
3국의 북 소리 중에서 가장 커다랗게 들리는 북소리가 일본의 북소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게다가 검의 형상을 한 북채를 들고서 사무라이 같은 자세로 큰북을 두드리곤 하는 모습은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전해주었습니다. 샤미센을 연주하며 중간중간 리듬을 잠시 끊어 가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연출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화려하진 않지만 의상 역시 깔끔한 느낌이었습니다.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는 손짓이라든가 객석을 뚫고 등장하는 도입부 등이 야고로 돈 북춤의 전형이 거리축제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관객들의 호응도 무척 높았고 박수도 크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북을 '울린다'는 소리를 가장 실감나게 들려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3. 한국
한국의 북소리는 호리호리한 미녀들의 장고춤으로 시작되었습니다만, 북보다는 춤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진 듯 해서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낯익은 가락이었기 때문에 편안하긴 하더군요.
소고춤의 안채봉, 걸북춤의 인간문화재 박병천, 고성 오광대, 3북춤 등이 나왔습니다. 한, 중, 일 3국을 통틀어 무엇보다 갈채를 많이 받았던 작품은 역시 3북춤이네요.
30여명의 여성들과 10여명의 남성들 그리고 사물놀이패가 두드려 대는 북소리와 그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을 이룹니다. 프랙탈 무늬 같은 현란한 정교함이 미의 극치를 만들어내며 관객을 환호하게 만들더군요.
그 외에도 북의 대합주, 문둥 북춤 등이 나왔습니다만, 한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의상입니다. 너무도 현란한 색상들이어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으니까요. 춤사위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두었기 때문일까요? 더욱이 일본과 중국의 공연 팀이 북춤 전문 공연단임에 비해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에 원인이 있을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4. 마지막의
대미는 역시 삼국의 북이 모두 나와서 하나의 가락에 맞춰지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각국의 향취를 지니고 있던 북들이 어떻게 그리 똑닮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어쩌면 그 모습이 보고 싶어 공연장을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큰북의 원주는 삼국 공히 두사람 이상이 감싸안아야 할 만큼이며 높이는 가슴정도까지입니다. 작은북이나 중간 북의 크기도 삼국이 비슷하고요. 모든 사람들이 북을 하나씩 짊어지고 나와 무대를 가득 메웁니다.

둥둥둥둥둥…..

북소리가 사람의 심장소리를 닮았다고 하던가요?
이미 북소리는 제 가슴속에서 진동하며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둥둥둥둥둥……

바다가 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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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竹島. 대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잠을 자다가 음식을 먹 는다는 행태는 권태롭다.
허겁지겁 깨워 어딜가자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좋을만큼, 그러나 졸립다.

내 인연의 여러갈래 길.

버려야 할 특별한
그 무엇도 가지지 못한 자에게
바다는 너무 냉정한 거인이다.

스물 일곱.
그동안 몇몇의 바다를 다녔지만, 그의 미세한 숨결을 느끼며 그
가 정말로 살아있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잔잔히 바
라보고 있노라면 바다는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쉼없
이 속삭이고 있었다. 삶과 죽음, 혁명과 투쟁, 평화, 행복, 사람
과 사랑, 하늘, 인생 …따위의 단어들을 내 가슴에 하나하나 펼
쳐보이며 하늘한 숨을 토해놓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 올여름의 바다는,
끈적한 욕망의 집착과
의지박약으로 덧칠된 군더더기같은 삶과
모든 인연의 줄을 끊기 위한
'버림'을 준비하는 聖所였다.

그런 하잘데 없는 쓰레기들을 버리려고 바다를 찾아가다니. 바
다는 삶과 같아서 내가 무엇을 버리던간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
것이 내겐 참으로 슬프게 다가왔다. 바다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일
까? 살아있다는 일이 내게만 버거운 것은 아닐지언정, 이런 상념
에 빠져드는 것도 아직 덜 ….결국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고 말
았다. 외려 인연의 줄 하나가 더욱 튼튼하게 날 조여왔다.

환상을 보았음이다. 그때에.
뱃전에 서서 걸어다닐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만큼 일렁임에
익숙해 지는 그 때에, 난 구름 속에서 빠져나와 바다로 걸어 들
어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날 보며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다가 되었다.

충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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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15:30
날은 무척
덥다.
달랑 옷가지 몇개만 든 배낭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다 버리고 오자.

7/31/16:30
What the hell! 왼쪽,새디스트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남자와 여자는 계속해서 서로를 괴롭히고 있고 오른쪽,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찡찡대는 꼬마녀석, 앞엔 엉덩이를 들이미는 입석의 아줌마. 아이들은 싫다.

7/31/20:00
길이 많이 막힌다.
느리다. 느림에 익숙하지 못하다. 느림에 익숙하지 못해 불안하다. 이것이 ‘현대’ 혹은 ‘문명’이라고 지칭되는 가속인가?

7/31/20:05
가만 생각해보니까,
내가 불안해 하는 이유는 느림에 익숙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못하는 데 있었다. 아니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이유. 아침 8시부터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극적이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그런 한심한 이유로 이렇게 초조해하다니!

7/31/21:40
여기는 마산.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은 없다. 그 하나 뻘건 십자가. 일견하기에도 지옥!

7/31/22:10
마산 지나서 옥수. 여독이 쌓인다는 생각이 들만큼 피곤하다. 하지만 달은 참 밝다.

7/31/22:50
충무! 드디어.

7/31/24:50
짐을 푼다. 베란다에 서면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