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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일주 로드런

  • yoda 

인라인 시작하고 3개월만에 제주도 로드런을 하겠다고.

들어가며 (2003.7.20)

내일이 드디어 출발이다. 4월부터 배운 어설픈 인라인 실력으로 제주도를 한바퀴 돌 수 있을까? 혼자서 240키로를 과연 갈 수 있을까?
준비물 점검.

  •  의약품 – 식염포도당, 소독약, 밴드, 붕대, 마데카솔, 아토피 관리용 연고 : 빨간약은 부피 때문에 뺐고, 식염포도당은 만삼천원짜리 큰통을 샀는데 여행이 끝난 지금 98%정도는 남았다.
  • 스케이트 용품 – 스케이트 K2 카탈리스트, 헬멧, 3팩 보호대, 브레이크패드 1개 (브레이크 패드도 2/3 이상 남아있다면 사실 필요없다), 육각렌치(도움주신 분의 말씀처럼 베어링 1세트, 휠2~3개, 스페이서 등도 준비하려고 했으나 포기했다. 자료조사를 하다보니 카탈리스트의 698베어링은 688 베어링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
  • 의류 – 손수건, 팬티1, 수영복1, 면티1, 쫄바지, 두건, 수건
  • 화장품 – 썬크림, 칫솔, 치약, 샴푸
  • 그외 – MP3Player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간중간 생생한 녹음기로 쓰기 위해 준비했고, 시간날 때마다 제법 열심히 녹음을 했다. 그러나 지금 글을 쓰려고, 들어봤는데 쉬익쉬익하는 거센 ‘바람’소리에 당최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지겨웠던 맞바람!), Digital camera, 물안경, 비틀맵 제주 지도(이 지도는 아주 유용하다.)

이렇게 짐을 챙기고 보니 스케이트 포함한 배낭의 무게는 7키로, 스케이트를 제외하면 5키로. 출발하면서, 샌들과 반바지와 쿨맥스 티셔츠를 입고 갔다.

첫째날 (2003.7.21) : 제주공항 -> 협재 (실 로드런 거리 30km)

09: 30 제주공항 도착
날이 흐리다. 더군다나 아스팔트마저 흠뻑 젖어있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대로 비만 주룩주룩 오면 어쩌나…도착부터 심란하다.
09: 50 공항을 빠져나와 인도에서 간단한 체조를 하고 길바닥에서 인라인을 갈아신다. 오가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거 같아서 냉큼 고글을 뒤집어 쓰다. 날은 흐리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다.
10: 30 용두암 해안도로
공항 뒤 용문로의 자전거 도로를 타고 1km정도 가면 차도로 내려서도 될만큼 한산해지며, 곧 해안도로가 등장한다. 짜잔. 이 해안도로의 바다를 오른쪽으로 두면 제주도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게되고, 왼쪽으로 두게 되면 시계방향으로 돌게 된다. 도는 방향과 바람과 관계가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방향의 이번 로드런은 계속해서 맞바람이었다.
용두암까지 갔다. 어디 빈틈으로 볼 수 없을까 하고 주위를 한참 돌았는데, 용두암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입장료를 받는 폭포며, 바위들은 돈을 내지 않고서는 볼 수가 없다. 생수 작은 거를 두개 사고 본격적인 로드런을 시작한다.
12 : 10 이호 해수욕장
자전거 도로와 차도를 넘나들며 열심히 달려서 드디어 이호 해수욕장. 좋다.
여기서 잠깐.
제주도의 자전거 도로는 차도와 별도의 경계석 없이 선으로만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매우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 자전거 도로에 자잘한 돌이 너무 많아서 인라인을 타기에는 좋지 않다. 그 돌들 때문에 다운힐에서도 속도가 나질 않는다. 결국 자꾸 차도로 나가게 되는데, 경적소리와 자신의 센스를 바탕으로 눈치껏 걸쳐가는 수 밖에 없다.
생수 작은 두통은 이미 바닥이 났고, 해수욕장 근처의 상점에서 이온음료 한병을 원샷하고, 물 한병과 이온음료 한병을 더 사서 배낭에 넣었다. 불현듯, [운동중수분 과음하면 죽을 수도…]라는 기사가 생각나서 앞으로는 갈증을 좀 참기로 했다.
상점에서 자전거 일주 청년 셋을 만나서 잠시 수다를 떨었다.
13 : 40 구엄리
이호 ~ 애월 해안도로. 이 구간은 거의 대부분 업힐. 업힐을 한참 오르고 나서 코너를 돌면 황당스럽게도 다시 업힐이다. 다운힐은 아주 가끔씩 나온다. 고지로 고지로 올라가는 기분. 미칠 지경이다. 50미터 언덕을 힘겹게 돌아서니 맞바람은 의구한데 다운힐은 간데 없네. 어즈버 내리막 경사는 꿈이런가 하노라.
이호~애월 구간의 중간중간에서 MP3 player로 많은 녹음을 했지만, 지금 그 자료를 알아들을 방법이 없다. 바람소리가 어쩌면 그리 크게 녹음이 됐는지…
힘들어 죽겠다고, 배고파 죽겠다고 떠든 거 같은데, 그 와중에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이 구간은 식당이 그리 많지 않고 또 맛있어 보이는 집도 없다. 구간 전이나 끝에 식사를 해결하는게 낫다.
여전히 날이 흐리다. 해물뚝배기(8,000)는 성의 없다. 풍경을 찬 삼아 겨우 점심을 때우다.
14: 40 이호~애월 어디쯤
업힐에 지쳐서 퍼졌다.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제법 근사한 벤치가 있어, 샌들로 갈아신고 당분간 걸어갈 작정을 하다. 쉬는 도중에 자전거 일주를 하는 젊은 친구들을 둘 만났다. 제주에서 어제 전투경찰로 만기전역하고, 전역기념으로 제주 일주를 한단다.
스물몇.
좋을 나이다.
이 친구들은 후에 중문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이후 서귀포에서 만나 급기야는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17: 10 한림
한림 표지판 밑의 돌.
이 구멍 숭숭 뚫린 돌은 정말 많다. 도로의 경계석도 이돌로 만든다.
이제 겨우 30km를 왔을 뿐인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하루에 70km씩 갔다던 대항항공 동호회 사람들은 세미프로쯤 되나보다. 한림에서 한시간쯤 더 널널하게 있다가 오늘은 그만 타기로 하고 버스를 탔다.
17 : 40 협재
버스를 타고 도착한 협재. 버스 내리자마 꼬드기는 아주머니에 끌려 2만원에 깨끗하고 조용하고 시원한 민박을 잡다.
18 : 00 한림공원
협재에서 1km즈음에 한림공원이 있다. 큰맘 먹고 들어가 본다 (5,000) 나무며 동굴이며 제법 근사하다! 쫄바지를 입은 부분만 까맣게 탄 다리. 타이즈를 입었다던 누군가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19 : 00 협재 해수욕장
샤워를 하고, 쫄바지와 티셔츠를 말린다. 물론 비가 올 수도 있으므로 빨지는 않는다.
협재 해수욕장에 나가본다. 해안에서 50m를 걸어가도 허리 밖에 물이 차지 않는다. 신기한 해변이다. 저녁인데도 물이 별로 차지 않다.
물빛도 동해나 서해, 남해와는 또 다른다. 비취빛이라고 해야할까?
해수욕을 잠깐 하고 숙소로 돌아오다.넉넉한 마음으로 다시 산책을 하다가, 옥돔구이(12,000)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다.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음식으로 셀프보상한다.
그나저나 이런 페이스로는 죽었다 깨나도 2박3일에 완주는 불가능할 거 같다.

관련 글  2024년 1월 어느 날

둘째날 (2003.7.22) : 협재 -> 서귀포 (실 로드런 거리 42km)

08 : 00 기상
어제 저녁에 맥주 한캔 마시고, 일정 고민하다가 22: 30분쯤 잠이 들었다. 족히 10시간 가까이 숙면을 취한 것이다.
둘째날도 여전히 흐리다. 인라인 타기에는 훨씬 낫다. 해물뚝배기를 한그릇 먹고 다시 출발.
10 : 00 협재 ~ 신창
좀 갈만 하다.
어제 이호~애월구간에서 적립하여둔 다운힐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중간에 풍력발전소.
정치적인 선택을 경제적인 문제로 치환하지 말자고 얘기할 때, 내가 예로 들곤하는 풍력발전소. 화력발전소가 풍력발전소보다 경제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올바른 것은 아니다.
13: 00 신창 ~ 대정
신창 ~ 절부암까지의 해안도로는 포기하고 계속 12번 국도로 직행
수월봉 ~ 대정 구간의 해안도로는 매우 상쾌하다. 적당히 완만한 경사여서 오르막도 내리막도 즐겁다. 도로엔 차도 별로 없다.
사진기를 꺼낼 틈도 실은 별로 없어서, 가끔 물을 마실 때나 한 컷씩.
14: 00 중문
대정에서 버스를 탔다. 길이 좋다고 오버페이스를 한 모양이다. 힘들어서 체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고, 중문 관광을 하고 저녁까지 서귀포에 도착하려면 필연적인 선택인 듯 하다. 중문 입구에서 스케이트로 갈아신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테디베어 박물관(6000인데 들어가진 않았다) 하이얏트 호텔의 올인 촬영지에서 본 중문해수욕장, 바다, 언덕 등 중문 관광단지에도 적당한 식당이 없는 듯 하다. 관광센터 2층에서 아주 평범하게 된장찌개를 점심으로 먹었다. 점심을 먹고, 제주 국제 컨벤션센터와 퍼시픽랜드, 여미지 식물원 등을 역시 입구까지만 다녀왔는데, 괜한 체력낭비였다.
여미지 식물원은 시간만 있었으면 들어갔을텐데, 아쉽다.
중문에서 그 예비역 전경 청년들을 또 만났다. 서귀포에서 한잔하기로 하다.
15 : 00 천제연 폭포
서귀포시의 천지연 폭포와 혼동할 수 있다.
이 구간은 현재 공사중이어서 몹시 혼란스럽다.
중문관광단지부터 천제연 지나 언덕 넘어갈 때까지 자전거 도로도 없고 길도 좁고 결국 한동안을 걸어서 가야만 했다.
역시 천제연폭포(2700)도 입구만 지나쳐 왔으며 아래의 사진은 도로에서 본 천제연 다리.
17 : 00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차들이 너무 많다.  체력이 다 소진되서 너무 힘들었다.
더우기 서귀포 시내로 들어가는 그 공포스런 1차선 길을 통과할 자신도 없고, 월드컵 경기장에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들어가기로 한다.
17 : 30 오, 서귀포 시내 입구
역시 자료조사한 대로, 공포스러운 코스이다. 1차선 일방통행에 자전거 도로도 거의 없다. 정말 위험한 곳이다. 버스를 타길 잘 했다고 내심 위로한다. -.-
18 : 00 정방폭포
버스를 탄 뒤엔 항상 기운이 넘쳐단다고 착각한다. 서귀포 중앙로 끝자락에서 내려서 정방폭포까지 가보기로 한다.
빈틈으로 볼 수 없나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역시 빈틈은 없다. 2000원을 내고 보기로 한다. 오. 멋지다.
19 : 00 모텔
숙소를 잡다. 3만원짜리 모텔인데 혼자 왔으니까 2만5천원에 달라고 했다. 그러라고 한다.
샤워하고 전경친구들과 연락하여 돼지갈비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그 친구들은 잡은 숙소도 모텔인데 남자 셋에 2만5천원에 예약했다고 아쉬워한다. (중앙로 로타리 반대 부근에 수협 맞은편 엘지 주유소 그 옆에 에이스 모텔)

관련 글  어머니께

셋째날 (2003.7.23) : 서귀포 -> 제주시 (실 로드런 거리 16km)

09 : 30 서귀포 – 표선
창문을 열고 보니, 비가 주룩주룩 온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려고 했더니만 하늘이 날 도와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실은 내심 만족스러웠다.
무척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중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표선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중앙로터리 옆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탄다. 표선에 다왔는데도 비는 계속 온다. 내친김에 성산까지 가기로 한다.
10 : 00 성산 일출봉
성산일출봉에 다오니 비가 긋는다. 표선부터 성산까지는 환상의 다운힐 코스라 했건만, 버스 타고 오면서 직접 확인하니 정말 그렇다. 이어지는 내리막에 맘이 찢어질 거 같다.
성산일출봉(2200)에 올라가기로 한다. 멋지다. 나중에 시간되면 일출도 보고 싶다.
12 : 00
점심을 가볍게 먹고 인라인을 좀 타기로 한다. 아직 아스팔트가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지만 조심조심 간다.
성산부터 세화까지도 갈만한 코스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해가 난다. 세화 조금 못미쳐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가는 버스를 탄다.
16 : 00
공항 피시방에 있다가 안개로 인한 비행기 결항 소식을 듣다. 이후 밤 9시까지 온갖 고생을 하며 대기를 했지만, 결국 출발을 하루 더 미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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