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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맘에 든다.

꽁트라고 해도 좋을만큼 짧은 글이 12개 – 초록반지, 보트, 지는 해, 검정 호랑나비, 다도코로 씨, 조그만 물고기, 미라, 밝은 저녁, 속내, 꽃과 비바람과 아빠의 맛,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적당함 -, 그 각각의 글이 지닌 여운은 아주 깊다.

누군가 자신의 일상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곧 그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바나나가 보여주는 일상은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동시에 전혀 닮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강렬한 스펙타클이나 긴장이 없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나긋한 감정이 담긴 평온한 풍경의 이면에 깊은 관찰이이 있다는 점에서 상이하다.

아래와 같은 구절들은 얼핏 보면 흔한 경구들 같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작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작가’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견디기 힘들었다. 외로워서 발을 꼭 맞대고 잤던 할머니. 내 마음에 조그만 그림자만 어려도, 나 자신보다 빨리 눈치채고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튀겨주었던 할머니.
from 초록반지

식물이란 그런 거야. 알로에 하나를 구해주면, 앞으로 많은, 여러 장소에서 보는 알로에도, 너를 좋아하게 될 거다. 식물끼리는 다 이어져 있거든.”
from 초록반지

점점 기뻐하는 나 자신이 그 증거였다. 재미있는 요소는 하나도 없는데, 야만스러운 생명의 숨결이 나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본능이 기뻐하라!고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나는 아무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낳자. 어디서 낳을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낳아보자.
from 지는 해

말하지 않아도 좋은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억지로 얘기하기를 그만두면, 몸이 오랜 세월에 길든 서로의 리듬을 마음대로 새겨준다. 그러면 대화는 느긋하고 매끄럽다.
기억이 점차 또렷하게 되살아 났다.
from 검정 호랑나비

다도코로씨는 옛날 모두의 묵인 하에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키웠던 고양이 같다. 의무는 아닌데 모두들 먹이를 주어, 늘 거기 있을 수 있었던 고양이. 다도코로씨는 빌딩과 빌딩 사이의 조그만 화단 같다. 그가 있어 모두들 조금은 이 세상을 좋아할 수 있고 자신의 선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from 다도코로씨

그렇다.
우리가 슬퍼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많은 무덤덤한 일들을 우리 몸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싫든 좋은 그것이 몸의 운명인 것이다.
사고와 판단 이전의 그 어떤 미동.
그것이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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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대표적인 예는 오르가즘이다.

“소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1개의 댓글

  1.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편견이 있음을 고백한다.
    자기 필명을 바나나라고 지은 작가라면
    얼마쯤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
    그래선가? 바나나 소설은 별로 건진 기억이 없다.
    덧붙여서…
    바나나란 과일 자체를 싫어해.
    요시모토 스트로베리나
    요시모토 그레이프면 그녀를 좋아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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