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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6/10)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 모를 소도시…
오후 두시쯤의 한적한 거리…
긴 옷을 입기엔 덥고, 반팔옷을 입기엔 이른 듯한…
낮잠이 쏟아질 것만 같은 부드러운 공기…
가로수는 물이 올라, 나뭇잎에 햇살이 찰랑거리는…

그런 길을 콧노래를 웅웅거리며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 말이지요.
그곳에서 684부대가 자폭을 했습니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새해 첫날의 오후는 안개가 가득 끼었더군요.클릭, 큰 그림

1. 강우석 감독은, 비지니스맨 맞습니다. 맞고요.
전작 ‘공공의 적’도 그렇게 버려놓더니만,
이 좋은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밖에 찍어내질 못하는군요.
그는 시나리오를 100% 살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캅스 이후 그저 ‘평균 이상’ ‘나쁘지 않아’ 정도의 보통 영화를 찍어내는 것을 보면, 앞으로는 비지니스에 전념하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2. 영화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그 비중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다찌마와 리’가 박중사보다 인상 깊지 않습니까?
갈등 구조도 너무 많지요.
– 조중사와 박중사 : 시종일관 냉엄을 유지하는 조중사야 말로 정리작업의 적임자입니다. 살기 위해서 훈련병 정리를 주장하는 박중사는 영화의 큰 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 훈련병과 기간병 : 이 부분은 철저하게 교육자와 피교육자로 구분되어야 했습니다. 쓰레기와 쓰레기를 정화하는 정수기. 그 갈등이 점점 첨예화되어 곧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의 조성.
그러나 영화에서는 훈련병과 기간병이 적당히 어울리는, 마치 어설픈 스톨홀름 신드롬을 연상케 하여,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있지요. 동정과 분노가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으로 다가옵니다.
– 국가와 개인 :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갈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좋은 영화가 될 많은 물음이 생기는 주제이겠지요.
단일 민족주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그 사회, 권력과 복종…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3. 그림이 별로입니다.
좀더 과장하여, 좀더 웅장하게, 좀더 처절하게.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어정쩡한 수위.
ps. 이제 태극기 휘날리며가 남았군요.
살인의 추억 vs 올드 보이 vs 태극기 휘날리며의 최종 승부가 기대됩니다.
실미도는 예선 탈락~

“실미도 (6/10)”의 3개의 댓글

  1. 신년 저녁에 봤습니다.
    주인장의 의견에 대략 동의…
    그러나, 살리에르의 욕망을 이해하듯
    강우석 감독의 욕심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큰 돈을 굴릴 수 있는 자가, 저렇게 진중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만으로도.
    영화내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에 의아했는데
    설명하신 캐릭터 형성 실패가 듣고 보니 그런 듯 하네요. ^^

  2. juo님의 의견에 동감.

    그래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큰 돈을 굴릴 수 있는 자가, 저렇게 진중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만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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