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형,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그러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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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D 아니?”

내일 먹을 콩국수를 위해 불려 놓은 콩의 껍질을 까면서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물어 왔다.

“D형? 알지, 왜?”

“얼마 전에 죽었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 나이에 흔히 볼 수 없는 세련된 귀걸이와 옷차림에 내심 부러워 할만큼 날씬하고 센스있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은 전혀 맥락이 닿질 않았다.

“교통사고야?”

“아니, …자살로…”

어머니는 답하기 전에 한참의 시간을 두었고, 입을 열고서도 자살이라는 단어 앞 뒤에 또 한참의 여백을 뒀다.

나는 그 빈 시간 동안 천천히 얼어 붙어 사고가 하얗게 정지해 버렸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귓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눈 속에는 형의 20대 모습이 생생히 떠 올랐다. 한참 팝송에 빠져들어 Nolans의 Sexy music을 흥얼거리던 초등학생에게 가사의 뜻을 물어보며 장난꾸러기 미소를 짓던 형의 얼굴 말이다.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가장 한참일 때의 얼굴이 생각난 것일까? 자살이라는 단어가 떠 올리는 무겁고 우울하고 끔찍스런 감정을 상쇄시키려는 무의식의 반동이었을까?

이후 전해 들은 D형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도 흔한 것이라 오히려 와닿는 것이 거의 없었다.

택시, 이혼, 당뇨, 뇌경색, 홍콩, 아들, 연금…

형은 이혼한 아내가 잠 든 것을 확인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어디에선가 목을 달았다고 했다. 죽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형의 그 결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간절히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고 죽음이 단숨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명동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흰 나팔바지를 유행시켰다고 했고, 약물 중독의 경험이 있었고 오른손 손가락에는 王, ?, ! 문신이 있었다.

“그거 왜 했어?” 라고 물으니 어디가서 말하지 말라며 조곤조곤 속뜻을 말해주고 곧 지울거라고 했다. 초등학생일지라도 남자를 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 유쾌함과 대범함이 사람을 으쓱하게 만들곤 했었다.

나는 아마, 형의 그런 성격과 소통 방식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D형,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그러면 좋겠어.”

패트릭 스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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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비릿하게 계속되고 있다.

어두운 하늘의 어딘가에 낡은 문이 생기고 그 문을 열고 심장 모양의 마스크를 뒤집어 쓴 마법사가 나타난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름 밤이다.

왜 나는 이 시간에 패트릭 스웨이지를 검색하고 있을까.

모처럼 일찍 잠 들기 위해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운 지 두시간 째, 영혼은 띠끌 하나 없이 맑다. 잠은 커녕 이대로 원고지 1,200매짜리 장편 소설도 쓸만한 각성이다.

여튼, 패트릭 스웨이지는 57살에 췌장암으로 죽었다. 몇 편의 영화와 몇 편의 노래를 남겼고, 위대한 배우라고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세대 몇몇 사람들에게는 꽤 근사한 배우로 남아 있을 게다.

사랑과 영혼이 아마 그랬다. She’s like the wind도 그럴 테고.

모르겠다.

일상이 무너지면, 어떤 어둠이 다가올 지 잘 알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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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쉰다는 느낌이 드는 토요일이다. 5일을 쉬지 않고 근무하면 역시나 피곤한데, 그런 만큼 쉼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겠다.

TV를 끄고 오래간만에 오디오를 켰다. FM이나 인터넷 라디오를 켤까 하다가 오랜만에 직접 곡을 골라보기로 했다.

역시 손이 가는 건 모짜르트. 심포니 5번 G마이너 안단테. 낯선 곡인데 모짜르트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겠다. 극한까지 밀어올린 감정을 담고 있지만 결코 선을 넘어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든 밝고 화려하고 장난기 넘치는 것이든 말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고, 거실에 가득찬 소리를 귀에 담고 있노라면 촛불과 샹들리에가 가득한 기다란 식탁 에서 쉼 없이 서빙되는 만찬 자리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매우 자주,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된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기름진 오리구이가 연상될 때도 있고, 치즈와 연유가 들어간 딸기 셔벗이 떠오를 때도 있고, 언젠가 정식당에서 맛 보았던 도라지 구이 같은 정갈한 음식이 생각날 때도 있다.

TV나 영화와 달리 음악은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귀 하나로 좁혀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고 더 많은 해석을 하게 된다.

천상 롤랑 바르트주의자인 내게,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데, 음악은 특히 클랙식이라 부르는 서양 고전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콘텐츠이다. 반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상업 자본주의의 신제품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음악은 없어져도 괜찮다. 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의의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으나 음악 시장 전체가 그것에 목을 매는 것만큼이나 우울한 일은 없다. 영속성, 발전, 울림, 재생산 등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빰빰빠밤. 하는 소리를 듣고서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는 음악을 듣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날 때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이 클로즈 업 되고, 첼로나 바이얼린을 연주자들이 짬짬이 악보를 넘기는 장면도 떠 오르고 차례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트럼펫 주자도 보인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행복한 일이다.

남해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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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처음으로 휴가를 내고 남해에 다녀왔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내가 이성복 시인을 처음 읽었던 것이 아마도 대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즈음 이었을 게다. 그 때 내게 ‘시’는 하나의 혁명이자 신세계였다. 기껏해야 윤동주나 박목월, 서정주 같은 교과서 시인들 밖에 모르던 내게 이성복이나 장정일, 황지우, 기형도, 김수영(아, 위대한 김수영), 고은, 김혜순, 김승희, 김지하, 김용택, 백석, 정지용 같은 시인들은 그야말로 별천지였고 꿀단지였다.

밤이나 낮이나 시집을 들척이며 가슴 설레였고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 시간이 한참 지나 제법 시를 안다 하는 즈음에, 돌 속에 묻고 싶었던 여자를 만나게 됐고 연애를 시작한 내게 이성복만큼 절절하게 다가온 시인은 없었다.

‘남해 금산’이 남쪽 바다 근처 어디라고만 생각했었고 언젠가 훌쩍 가 볼 줄 알았던 남해 금산을 찾기까지 무려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연애를 끝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쓰고 회사를 들어나고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일상에 침잠하면서 나의 남해금산은 그야말로 돌속에 갇혀있었다.

two of sea

시간을 내서 찾아간 남해금산은 맘에 쏙 들었다. 바다와 산,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시간들.

한국 온라인 서점은 어서 빨리 책 추천을 제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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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나 알라딘에서 가장 불만인 것은 제대로 추천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된 추천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도 음원의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고, 책에 대해서는 누가 어떤 책을 검색하고 상품 페이지까지 접근했는 지 알고 있으니 역시 같은 죄(?)가 있다 하겠다.

알라딘에서는 최근 추천 서비스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살펴봤지만 맘에 드는 구석은 조금도 찾아볼 수 가 없었다.

나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16년동안 알라딘을 이용했고 구매 내역은 약 80여권 정도, 보관 리스트에 30여권 정도가 저장되어있다.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들과 내가 상품 페이지에 접근했던 책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수백권의 취향 정보가 있을텐데 추천된 리스트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처음 20여개의 목록을 살펴보니, 이전에 구매한 작가의 책들과 그 카테고리의 베스트셀러 정도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심지어 이미 읽은 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 웃겼던 것은 바로 이 안내문구였다, 이 포스트를 쓰게 만든 계기.

“이미 구매하신 책에는 ‘구매했어요’를 클릭해 주세요.”

여러 정황을 감안하여 추측해보면, ‘아마 다른 곳에서 샀다면 표시해주세요’라는 뜻일텐데, 언뜻 듣기엔 ‘알라딘은 당신이 구입한 책이 무엇인지 몰라요’라는 우스꽝스러운 자백으로 들린다.

‘관심 없어요’는 취향의 적극적인 반영이니 괜찮지만, ‘구매했어요’가 반드시 선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알라딘의 추천 개선은 보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존을 보자.

improve your recommendations 도움말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마존은 구매내역만을 가지고 추천리스트를 만든다’는 점이고, 구매 내역의 특정 아이템을 추천에 집어넣을 지 말 지에 대한 구분만 존재한다.

아마존에도 물론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구입하지 않은 책, 구입한 책, 중고로 판매한 책, wish list에 담은 책 등등 여러 정보가 있지만, 사용자가 보다 나은 추천 목록을 위해 해야할 일은 일부 구매 상품을 제외하는 것 뿐이다.

다만, 선물을 별도로 구분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 지 궁금하다.


다시 애플뮤직을 보자.

애플 뮤직의 추천곡 조정하기를 보면 애플이 뮤직을 추천하는 요소는 아래의 3가지라고 한다.

  • Apple Music 카탈로그에서 청취한 음악.
  • 좋아요 또는 별로예요로 선택한 음악.
  • Apple Music에 처음 가입할 때 선택한 장르 및 아티스트.

유명 데이트앱인 Tinder를 보면 사용자의 액션은 단 2가지. 왼쪽으로 보내 쓰레기통에 넣거나 오른쪽으로 보내 저장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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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목록을 잘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고도화할 수록 사용자의 만족도를 올려 줄 수 있는 기능이기도 하다. 모든 서비스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과 데이터를 통해서 모든 사용자에게 꼭 맞는 추천 목록을 내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어오는 용모만 보고서도 척하니 고민을 꿰뚫어보는 용한 점쟁이처럼 말이다.

알라딘은 추천목록 고도화를 위한 사용자의 액션을 요구할 단계가 아니라 우선 현재의 데이터를 가지고 보다 만족스러운 추천목록을 만드는 것이 더 급한 과제이다.

소설가가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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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의 세계는 정말 넓다. 소설가를 소재로 이렇게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다니.

아쿠타가와상이나 나오키상을 비롯 무라카미 류, 엔도 슈샤쿠,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 등의 작가 이름이 쉴 새 없이 나오는 컷들에서 나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노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많은 범인들을 압도하는 천재성이 어디에나 있다. 인류가 아닐 지도 모르는 그들을 보면 감탄을 넘어 경외에 이르게 되는데, 그 천재들의 기이한 행적과 이해할 수 없는 사고회로가 어떻게 만들어져 작동하는 지 잘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니 어쩌면 당연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확고한 자기 세계와 그에 대한 믿음을 천재들은 반드시 갖고 있다.

그냥 쓸 뿐.

이런 생각만으로도 주인공 히비키가 보여주는 불멸의 자아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일상의 자세는 새삼 깨우침이 있다.

강추. 소설가가 되는 방법

소림축구 Shaolin Socc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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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내 점수 : 9점

2001년 개봉이니 무려 17년이나 지난 작품.

가끔씩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옛날 영화(예를 들면 인디아나 존스나 ET같은)를 찾아서 같이 보곤 하는데 소림축구에 대한 반응은 역대 최고였다.

‘아니, 저게 무슨 말도 안되는 슛이야’

깔깔대며 영화를 즐기는 아이들에게도 황당무계한 만화 같은 스토리와 화면이 몹시도 맘에 드는 모양이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감탄했던 것은 영화가 주는 메세지가 너무 정직하고 꾸밈이 없다는 점이었고, 그게 감독 주성치와 작가 주성치가 원하는 이야기였다면 그를 다시 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한때 인기있었던 희극 배우가 아니라 찰리 채플린의 뒤를 잇는 위대한 예술가로 말이다.

당신은 아름답고 예쁘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이 메세지가 무수히 반복되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 당연한 이야기를 쉬이 수긍하지 못하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일침의 아픔이 될 정도였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다작을 접고 3-4년에 하나의 작품을 내놓는 주성치.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싶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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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Db

내 점수 : 8점

미처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히어로들이 등장하는데도 이질감 없이 말끔한 스토리를 짜낸 것이 헐리우드의 저력이겠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원작을 보지 못했지만, 마블 코빅스의 방대한 세계관과 작품을 생각해보면 원작의 중요성은 격감한다.

킬링타임을 위해 슥슥 넘겨볼 수 있는 영화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타노스는 과연 악당인가’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으로도 제 값은 했다고 생각한다.

 

smugmug, flickr 인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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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ugMug acquires Flickr

2005년부터 야후 직원에게 무료로 제공되면서 pro버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플리커가 또 인수됐다.

10년이 넘게 사용한 서비스인데다가 SLR을 구입하면서 찍은 모든 사진이 모여있어서 이 서비스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꽤나 귀찮게 된다.

2004년 만들어진 서비스가 Yahoo!에 인수되고, Yahoo!가 망하면서 버라이존으로 넘어가고 다시 AOL에 팔려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용자에게 가치를 주는 서비스는 어떻게든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인데, 거꾸로 생각하면 모든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집중하여 이용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머그머그와 플리커, 둘 다 사진을 핵심으로 하는 서비스이니만큼 좋은 시너지가 나길 바라고, 잘 돼서  1만장이 넘는 사진을 백업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아래는 2005년 5월 22일, 처음 플리커에 올린 사진.

gate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