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이 갔다. 혼자서. 먼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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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존경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그녀의 슬픈 웃음 소리 ‘킥킥’을 듣고나서부터 나는 그 발랄한 슬픔에 푹 빠졌다.

들춰보니, 몽생 취사하고, 불취불귀하여, 모든 게 흐릿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에 어느 여대의 교수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무언가 뒤섞인 뿌연 기억이었나 보다. 독일로 유학을 간 것도, 거기서 현지인 교수와 결혼을 한 것도, 암에 걸린 것도, 아무 것도 알 지 못했다.

지금 보니 누님이라도 불러도 좋을 나이였는데, 좋은 작가가 떠났다.

위암 말기를 선고(어째서 선고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받고 오래 전 출간한 산문집을 다듬었다고 했다.

가는 길에 도서관에서 책을 열어봐야겠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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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걱정인가 하면,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게 걱정이다.

한 이십년 비슷비슷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년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 지 솔직히 가늠되지 않는다.

이게 불안의 근원인데, 좀 더 자세히 파보면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사실 내가 아니라 내가 꾸린 가정이다.

특히 아이들 말이다.

야생의 초원이나 세기말 좀비 가득한 혼란한 세상에 내놓으면 당장이라도 사냥당하거나 끝내 굶어죽을 것 같은 아이들. 사실 아이들은 내 생각보가 훨씬 강해서 이게 다 부질없는 염려일 지도 모르겠지만, 눈을 감기 전까지 자식 걱정을 하는 게 부모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나도 범인이니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인류와 지구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같이 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알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되 타자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사람. 자기 몸의 소중함을 깨달아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않고 병과 고통을 이겨내는 의지를 갖춘 사람, 역사, 철학, 문학, 미술, 음악, 고전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옳은 일을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을 내 줄 줄 아는 의무감과 여유.

적어 놓고 보니, 그렇게 살지 못한 나의 희망을 투영한 것도 같다. 아니, 그렇다.

저렇게 키워준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없어지는 것인가?

오래 전에 읽었던 시집 ‘막연한 미래에 대한 몽상과 반역’을 다시 꺼내야 할 때인가 보다.

그런데 저 시집을 쓴 건, 최근 성추문으로 시끄러웠던 이윤택이라, 꺼내 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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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아.

계속해서 개를 기르다 보면 여러 개들의 생과 사를 지켜보고 이별을 겪게 되지.

사람은 개의 빛나는 생명과 피하기 힘든 종언을 자신의 인생에 비춰 보면서 살게 되지.

사람은 개의 생과 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아.

장정일의 독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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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읽기에 대해 엄청난 의무감을 가지고 있고 늘상 부족하고 모자르다 생각하고 있다.

2006년에는 100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그 해 연말에는 55권의 책을 읽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1년에 55권은 주에 한 권 정도 읽는 템포. 2006년에는 야후에 있던 때였고,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전 세계 인터넷 쇼핑의 표준이 될만한 상품 페이지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책 읽기에 게을러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더위를 피해 찾아간 도서관에서 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하나를 펼쳐 들었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광범위한 주제의 지식에 대한 욕망은 그야말로 순수한 갈구, 그 자체라고 생각된다. 거기엔 어떤 욕심도 없고 의도도 보이지 않고 지식에 대한 탐구, 그 자체를 따르는 책과 책 읽기가 있을 뿐이다.

장정일이 책 읽기에 부여한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아 옮겨둔다.

‘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시민은 대중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다른 의견을 가지면서, 또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데, 독서가 이를 가능케 한다.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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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40도에 근접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는 1분도 견디기 어렵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일백 몇 십 년 만이라고 한다. 혹은 기상 관측 이래로 최고로 높은 기온이라고도 한다.

지난 겨울 한파를 같이 놓고 보면 70도가 넘는 온도 차이가 있다 하고, 어떤 앵커는 이런 한파와 폭염이 지구 온난화에 따르는 것이라 우리 삶의 일상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다들 밤 잠을 설쳐 생기가 없을 뿐 아니라 의욕도 떨어져 효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인류는, 중간고사를 코 앞에 둬야 책장을 여는 중학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고 펑펑 놀아 제끼다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꼴이 말이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북극곰이 설 얼음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수십년 째인데,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이 땅의 환경과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냐 물으면 나 역시 답이 궁색하다.

폭염 만큼 답답한 것은, 인류의 미래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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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자살했다.

놀랍기보다는 의문이 먼저 드는 죽음이다.

깊은 통찰력으로 언제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잊지 않던,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찾기 힘든 좋은 정치인 중의 한명이라 생각했는 데 말이다.

흔히들 ‘죽을 결심으로 살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냐’는 말을 종종 내뱉곤 하는데, 이렇게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광주에서 그 많은 사람을 해친 전두환도 저렇게 뻔뻔하게 큰소리를 치며 사는 세상인데 말이다.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학적 수준의 결벽증을 이제는 좀 벗어 버렸으면 한다.

아직도 뜯어내서 치우고 고쳐야 할 일들이 온전한 것보다 백배 천배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답답하고 갑갑하다.

며칠 전 D형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인다.

“의원님,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세상은, 아마  힘들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볼테니 신경쓰지 마시고요.”

D형,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그러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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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D 아니?”

내일 먹을 콩국수를 위해 불려 놓은 콩의 껍질을 까면서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물어 왔다.

“D형? 알지, 왜?”

“얼마 전에 죽었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 나이에 흔히 볼 수 없는 세련된 귀걸이와 옷차림에 내심 부러워 할만큼 날씬하고 센스있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은 전혀 맥락이 닿질 않았다.

“교통사고야?”

“아니, …자살로…”

어머니는 답하기 전에 한참의 시간을 두었고, 입을 열고서도 자살이라는 단어 앞 뒤에 또 한참의 여백을 뒀다.

나는 그 빈 시간 동안 천천히 얼어 붙어 사고가 하얗게 정지해 버렸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귓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눈 속에는 형의 20대 모습이 생생히 떠 올랐다. 한참 팝송에 빠져들어 Nolans의 Sexy music을 흥얼거리던 초등학생에게 가사의 뜻을 물어보며 장난꾸러기 미소를 짓던 형의 얼굴 말이다.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가장 한참일 때의 얼굴이 생각난 것일까? 자살이라는 단어가 떠 올리는 무겁고 우울하고 끔찍스런 감정을 상쇄시키려는 무의식의 반동이었을까?

이후 전해 들은 D형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도 흔한 것이라 오히려 와닿는 것이 거의 없었다.

택시, 이혼, 당뇨, 뇌경색, 홍콩, 아들, 연금…

형은 이혼한 아내가 잠 든 것을 확인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어디에선가 목을 달았다고 했다. 죽는 것은 물리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형의 그 결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간절히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고 죽음이 단숨에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명동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흰 나팔바지를 유행시켰다고 했고, 약물 중독의 경험이 있었고 오른손 손가락에는 王, ?, ! 문신이 있었다.

“그거 왜 했어?” 라고 물으니 어디가서 말하지 말라며 조곤조곤 속뜻을 말해주고 곧 지울거라고 했다. 초등학생일지라도 남자를 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 유쾌함과 대범함이 사람을 으쓱하게 만들곤 했었다.

나는 아마, 형의 그런 성격과 소통 방식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D형,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 그러면 좋겠어.”

패트릭 스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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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비릿하게 계속되고 있다.

어두운 하늘의 어딘가에 낡은 문이 생기고 그 문을 열고 심장 모양의 마스크를 뒤집어 쓴 마법사가 나타난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름 밤이다.

왜 나는 이 시간에 패트릭 스웨이지를 검색하고 있을까.

모처럼 일찍 잠 들기 위해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운 지 두시간 째, 영혼은 띠끌 하나 없이 맑다. 잠은 커녕 이대로 원고지 1,200매짜리 장편 소설도 쓸만한 각성이다.

여튼, 패트릭 스웨이지는 57살에 췌장암으로 죽었다. 몇 편의 영화와 몇 편의 노래를 남겼고, 위대한 배우라고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세대 몇몇 사람들에게는 꽤 근사한 배우로 남아 있을 게다.

사랑과 영혼이 아마 그랬다. She’s like the wind도 그럴 테고.

모르겠다.

일상이 무너지면, 어떤 어둠이 다가올 지 잘 알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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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쉰다는 느낌이 드는 토요일이다. 5일을 쉬지 않고 근무하면 역시나 피곤한데, 그런 만큼 쉼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겠다.

TV를 끄고 오래간만에 오디오를 켰다. FM이나 인터넷 라디오를 켤까 하다가 오랜만에 직접 곡을 골라보기로 했다.

역시 손이 가는 건 모짜르트. 심포니 5번 G마이너 안단테. 낯선 곡인데 모짜르트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겠다. 극한까지 밀어올린 감정을 담고 있지만 결코 선을 넘어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든 밝고 화려하고 장난기 넘치는 것이든 말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고, 거실에 가득찬 소리를 귀에 담고 있노라면 촛불과 샹들리에가 가득한 기다란 식탁 에서 쉼 없이 서빙되는 만찬 자리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매우 자주,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된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기름진 오리구이가 연상될 때도 있고, 치즈와 연유가 들어간 딸기 셔벗이 떠오를 때도 있고, 언젠가 정식당에서 맛 보았던 도라지 구이 같은 정갈한 음식이 생각날 때도 있다.

TV나 영화와 달리 음악은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귀 하나로 좁혀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고 더 많은 해석을 하게 된다.

천상 롤랑 바르트주의자인 내게,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데, 음악은 특히 클랙식이라 부르는 서양 고전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콘텐츠이다. 반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상업 자본주의의 신제품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음악은 없어져도 괜찮다. 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의의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으나 음악 시장 전체가 그것에 목을 매는 것만큼이나 우울한 일은 없다. 영속성, 발전, 울림, 재생산 등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빰빰빠밤. 하는 소리를 듣고서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는 음악을 듣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날 때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이 클로즈 업 되고, 첼로나 바이얼린을 연주자들이 짬짬이 악보를 넘기는 장면도 떠 오르고 차례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트럼펫 주자도 보인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행복한 일이다.

남해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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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처음으로 휴가를 내고 남해에 다녀왔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내가 이성복 시인을 처음 읽었던 것이 아마도 대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즈음 이었을 게다. 그 때 내게 ‘시’는 하나의 혁명이자 신세계였다. 기껏해야 윤동주나 박목월, 서정주 같은 교과서 시인들 밖에 모르던 내게 이성복이나 장정일, 황지우, 기형도, 김수영(아, 위대한 김수영), 고은, 김혜순, 김승희, 김지하, 김용택, 백석, 정지용 같은 시인들은 그야말로 별천지였고 꿀단지였다.

밤이나 낮이나 시집을 들척이며 가슴 설레였고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 시간이 한참 지나 제법 시를 안다 하는 즈음에, 돌 속에 묻고 싶었던 여자를 만나게 됐고 연애를 시작한 내게 이성복만큼 절절하게 다가온 시인은 없었다.

‘남해 금산’이 남쪽 바다 근처 어디라고만 생각했었고 언젠가 훌쩍 가 볼 줄 알았던 남해 금산을 찾기까지 무려 25년의 시간이 흘렀다.

연애를 끝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쓰고 회사를 들어나고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일상에 침잠하면서 나의 남해금산은 그야말로 돌속에 갇혀있었다.

two of sea

시간을 내서 찾아간 남해금산은 맘에 쏙 들었다. 바다와 산,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