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늘 최근의 동향이 궁금했엇는데, 자본이 금융 자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나서 더이상 이윤이 생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약간은 언급되어 있고, 무엇보다 알기 쉽고 읽기 쉽다.
뵘바베르크가 주장하는 대로, 상품에 대한 마르크스의 가정이 옳지 않다면 이라는 고민을 종종 했었는데, 찾아 읽어 봐야겠다.

늘 최근의 동향이 궁금했엇는데, 자본이 금융 자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나서 더이상 이윤이 생산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약간은 언급되어 있고, 무엇보다 알기 쉽고 읽기 쉽다.
뵘바베르크가 주장하는 대로, 상품에 대한 마르크스의 가정이 옳지 않다면 이라는 고민을 종종 했었는데, 찾아 읽어 봐야겠다.
제목을 쓴 후, 깜박이는 커서를 지켜보다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연도가 바뀌는 것은 나이가 한살 더 늘어난다는 뜻이며 그에 비례해서 남은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될 지, 생이 끝나고 나면 남는 후회나 안도는 무엇일지.
2018년에 꽤나 공들여 작성했던 리스트가 있다. 올해는 몇개라도 달성해 보겠다.
노동 조합 덕분에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는, 힘이 강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상대적인 부유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은 가난한 노동자들과의 경쟁이 가져올 수 있는 자신들의 노동력 가치 절하를 두려워한다. 자신이 공들여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안달이 난 고임금 노동자들은 종종 타지 노종자들에게 가혹한 시선을 보내며, 동료 노동자들보다 고용주들을 더 신뢰한다.
… 강력한 생산능력 덕분에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사회적 자유가 보장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하루 노동에 걸맞은 공정한 임금!’이라는 보수적인 표어 대신 다음의 혁명적인 표어를 깃발에 적어야 합니다.
임금 체계를 폐지하라
2주 전 쯤이던가, 엄마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눈 사람을 만드는 일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인 나와는 달리, 아직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게다가 눈사람은 귀엽기까지 했다.
처음엔 ‘마침내 플리커가 유료화를 시작하는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관련 글. smugmug, flickr 인수하다
잔달라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업로드하다가 발견한 주의사항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12월 17일에 올린 공지 사항(https://goo.gl/1MTHa9)을 읽어보니, 이건 거의 협박에 가깝다.
Important dates
January 8, 2019: Free accounts will be limited to 1,000 photos and videos. Free accounts with more than 1,000 items will no longer be able to upload new photos or videos.February 4, 2019: Any items over the 1,000-upload limit will be at risk of deletion, starting with the oldest of the items. Photos licensed through Creative Commons before November 1, 2018 will not be deleted, even for accounts over the 1,000 limit.
년에 60불이니까 한화로 6만원 ~ 7만원 정도의 비용.
내 경우 10년 이상된 사진, 1만장 이상이 원본 그대로 보관되어 있으니 충분히 지불할 만한 비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조급하고 위협적인 방식을 보니 그럴 마음이 싹 가신다.
CC 라이런스로 공개하기 싫은 가족들의 민낯과 연습용 사진들은 모두 어쩔 것이며, 백업이나 다운로드의 방법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모두 지워질 것이라 협박하는 것도 아주 불쾌하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글이나 사진, 영상 등의 자료들을 언제 어디서나 편히 사용하기 위해 많은 경우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언제든지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유출, 비용 증가, 무엇보다도 서비스의 장애나 사고로 인한 영구적인 손실까지.
고민이다.
플리커 서비스에 올라간 나의 사진은 모두 어떻게 처리할까? 그리고 십년 넘게 가장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플리커의 배신은 또 어떻게 처리할까?
해외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 지 구글링을 해보니…
PS. 플리커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앨범 단위로 다운로드를 받고, 앨범에 없는 항목들은 organizer를 이용하여 하나의 앨범으로 묶은 후 다운로드를 받았다.
일단 PC의 하드디스크에 모든 원본 화일들을 받아두었고, 이를 공유하거나 감상하기 위해서는 구글 포토를 쓰기로 했다. 별도의 태깅이나 앨범 작업은 하지 않고 원본을 저장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원본은 인화 이외의 용도로는 쓰지 않을테니, PC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고, 구글포토에 압축된 사진은 감상용으로 충분하다.
어떻게 된 이유일까.
나는 최근에 자본론을 다시 읽고 있다.
물론 맑스의 원전은 아니고 자본론을 소재로 한 이런 저런 부스러기들이다. 자본론을 기반으로 현재를 재조명한다거나, 자본론을 요약한다거나 자본론에 입분 시킨다거나 하는.
처음 자본론을 읽던 때가 기억난다.
이십 몇 년 전. 무리한 운동, 흡수되지 않는 과잉 영양, 몸에 맞지 않아 어딘가 불편한 옷. 그런 느낌이었지만 입시를 앞둔 수험생처럼 암기하고 집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빨아 먹는 자본가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사실 고치는 게 아니라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좌파인 나는 일상의 모든 판단 기준과 행동 양식을 그에 맞춰 살아왔지만 지금의 나는 임노동자의 틀에서 1센티미터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의식은 전형적인 쁘띠 부르주아가 되버렸다.
한심하지만 그렇다.
자본론을 다시 읽으면서 드는 2가지 상반된 생각은, 자본가가 되어야겠다는 뒤늦은 깨달음과 역시 자본주의를 고쳐야 겠다는 오래된 의무감이다.

내 평점 : 10.0
Guam 휴가 중 숙소에서 TV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입한 넷플릭스. 가입 후 모든 에피소드를 소비한 최초의 오리지널 드라마이다.
폐암 3기 중년의 고등학교 화학선생님이 가족들을 위해 마약을 제조하다가 결국은 마약왕이 되는 이야기.
가족, 가장, 남자, 조직, 범죄 등 여러 축의 이야기가 오밀조밀 엮이며 짜임새를 만들어내는 것은 뭐 두말 할 필요 없는데, 시즌3의 10화 ‘파리 한마리’처럼 한 회 전체를 소모(?)하여 상황과 심리를 묘사하는 대범함이 재밌었다.
넷플릭스는 모든 유형의 상품을 다양하게 구비한 e마트가 아니라 신발류만 취급하는 abc 마트에 가깝다. 넷플릭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오리지지널 콘텐츠,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넷플릭스는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아쉬움의 하나는 한국 사람들의 여행 경험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데에 있다.
대개의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 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 일정을 짜는데 이게 확대 재생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 좋지도 않은)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네이버에서 많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네이버에는 블로그나 카페처럼 경험을 기반으로 한 구전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괌 여행을 2015년과 2018년 두차례에 걸쳐 제법 길게 다녀왔는데 그 때 경험한 괴리, 그리고 알아 두었으면 싶은 점들을 정리한다.
구글 맵에 거의 모든 갈만한 곳이 나오므로 굳이 네이버 블로그를 뒤져가면서 일정을 짜지 않아도 괜찮다. 다름 사람들의 추천보다는 스스로의 직관과 종업원의 추천을 믿어 보자.
“실수는 없다, 그저 재미난 경험이 생길 뿐이다”

내 점수 : 9.0
지난 여름 한동안 CGV영화앱 1위를 차지했던 영화. 관심은 갔지만 어설프지 않을까 하여 관람은 하지 못했던 영화. 예를 들어, 쓸데없이 리눅스 부팅화면이 나온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우려와 달리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말끔한 영화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도 꽤 있었고, 휴대폰과 노트북이 없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에게도 흥미진진할만큼 이해하기 쉬웠다.
아이폰과 맥북, 페이스북, imessage와 페이스타임, 구글, 구글맵, 텀블라, 인스타그램, 벤모, 유캐스트, 트위터 까지 익숙한 서비스가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졌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무언가의 모니터를 통해 등장하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이 세계의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도 잘 그렸다.
작은 단서 하나 놓치지 않게 설계된 시나리오도 맘에 들었고 죽은 엄마를 사이에 놓고 마음을 가리는 아빠와 그렇지 않은 딸에 대한 묘사, 작은 갈등을 통한 가족애의 표현도 과하지 않았다.
‘도구’로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쓰는 게 어떤 것일까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직업인으로서 사용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좀 더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