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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 – 현대시처럼 끄적이는 단상

11월 11일.
10시가 넘은 퇴근길, 지하철, 5호선.
오늘 산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실린 신작 시 몇 편을 들여다 보고.
‘나는 요즘 밤마다 시청 앞에서 밤 공부한다’
라는 싯구가 제법 재밌다.
알고보니 그것은 올해 일흔이 넘었다며 허허거리는
김지하 시인의 신작 시.
나의 대학 시절은 민중,혁명,투쟁,통일,민주,자주.
이런 묵직한 단어들을  무겁지 않게 달고 다니던 무식하고 무서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변절 아닌 변절’로 낙인 찍힌 김지하 시인은
아직도 내게 그리 편하지는 않다.
감상에 젖어들 즈음
내 눈 앞에는 과자로 만든 집을 든 청년이 우두커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이 묵었을 법한 그 집을 본 나의 전두엽은
좋은 게 좋은 거지, 파블로프의 종소리가 되어
아이스크림 한 그릇 살 거라고 침을 흘리는데
지하철을 나오니 때를 맞은 소국이 색색별로 화려하다.
멜라닌 가득 중국산 과자에 비할까.
소국 한다발에 흐뭇해 가벼운 발걸음 위로
분명 빼빼로가 가득 들어있을 거대한 핑크빛 하트를 들고 히히거리는
고등학생 몇몇이 스친다.
나는 대뜸 그들이 부럽다.
재지 않고
제지하지도 않는
즐거움의 탐욕에 충실한.
인생은 언제부터
지금 아닌 미래에 즐거워지기 위한 괴로운 일로 가득차 버린다.
현실이 꿈을 대신하는 순간 인간은
늙어버린다던 건방진 후배 P의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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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 데이 – 현대시처럼 끄적이는 단상”의 6개의 댓글

  1. 소설家나 수필家는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지만, 시人은 그마저도 없어서 시인이라고 부른다는구려.
    요즘은 입에 가시가 돋도록 읽고 또 써야 그나마 살 수 있을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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