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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

연희 선배 모친상으로 광주에 다녀왔다.

SRT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빨라서 동탄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0년 광주로 내려가는 길은 그보다 10배는 더 걸렸고 더 어려웠었는데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마 한번쯤 인사를 드렸던 적이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나를 보자마자 눈이 벌겋게 충혈되는 상주를 보자 나도 마음이 아팠다.

삭힌 홍어를 먹으면서 아이들 이야기과 코로나 이야기와 직장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각자가 마주한 죽음과 각자가 다닌 상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그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가 외로워하신다고 이야기했다.

살아보니 큰 꿈은 점점 쪼그라들어, 영정 사진 속의 어머니처럼 자식을 키워내고 일생을 무난히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에 공감했다.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는 창 밖의 풍경을 눈에 계속 담았다. 멀리 산들이 겹쳐있고 기찻길 옆으로는 한동안 논과 밭과 비닐하우스, 그리고 농부의 집들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 가꾸고 잘 만든다 해도, 자연이 만들어낸 공간의 조화에는 눈꼽만큼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사람들의 구조물이 더 크고 넓을 수록 자연이 그린 선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음악을 들을까 하고 이어폰을 꼈는데, 마침 옛 음악이 나왔다.

Judas Priest, Before the dawn.

이 역시도 아주 어릴 적에 듣던 음악이라 마음이 아주 편했다.

30년 전에 만난 사람과 그의 어머니와 40년 전에 듣던 음악, 그리고 그 이전에도 비슷했을 창 밖의 풍경들, 이런 상황과 환경이 사람을 좀 느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느슨하고 느릿하고 단순했던 어떤 시절이 요즘은 아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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